교회는 오래전부터 유아세례를 행해왔다. 그런데 유아세례의 필요성과 의미에 대한 물음 역시 오래전부터 제기되었고, 오늘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교회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지속적으로 답해왔지만, 모든 이를 설득할만한 답을 찾기는 여전히 어려워 보인다.
유아세례가 야기하는 어려움 중의 하나는 원죄 교리와 상관한다. 아기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죄의 사함을 받는 세례가 필요하다는 말인가? 교회는 유아세례 때 아이에게 씻길 죄를 ‘원죄’라고 부르며, 그것이 ‘아담의 죄’에서 기인한다고 가르쳐 왔다. 현대 신학은 이를 아담이 지은 죄가 마법이나 바이러스와 같이 아기에게 전해진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고, 인간이 태어나면서 죄 안에서 모든 인간과 연대하여 살게 되는 인간 조건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죄의 사함을 받기 위해 아이에게 유아세례를 주어야 한다는 주장은 포스트모던 시대의 젊은 부부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문제로 다가온다.
사실 원죄는 모든 이가 경험으로 알고 있는 진리다. “사는 게 죄지”라고 하시는 어떤 어르신 말씀처럼, 인간은 악으로 기울어지기 마련이며,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는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죄와 악으로 기울 수밖에 없는 손상된 본성을 타고났음을 의미한다. 또한 인간이 짓는 죄는 개인의 죄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에게까지 전해져, 인간 스스로는 빠져나올 수 없는 죄의 사슬을 이루게 된다. 교회는 이러한 사실을 신앙과 오랜 경험으로 잘 알고 있기에 유아세례를 독려해 온 것이다. 유아세례는 아이가 이러한 죄의 사슬에서 벗어나 ‘새 인간’(에페 4,24; 콜로 3,10 참조)으로 태어나 은총의 빛 안에서 살도록 배려하는 예식인 것이다.
다른 한편, 유아세례의 의미를 심화하기 위해 ‘죄 사함의 필요성’ 말고 다른 논거도 조명될 필요가 있겠다. 프랑스의 성사신학자 루이-마리 쇼베 신부에 의하면, 유아세례에 대해 두 가지 근거가 교회 안에 존재해 왔는데, 하나는 아이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죄의 사함이 필요하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데 나이의 제한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갈라 3,26-28 참조)
두 번째 논거에 따르면, 유아세례는 원죄의 씻김만이 아닌, ‘그리스도께 속함’과 ‘성령에 의한 성화’를 위한 것으로, 자녀가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삶을 살도록 양육하겠다는 다짐도 담겨 있다. 아이에게 육적인 생명만이 아닌, 아이에게 영원한 생명을 마련해주는 것도 교회와 부모의 역할과 책무에 속한다. 물론 영원한 생명이 한 번의 예식으로 취해질 수는 없다. 그렇기에 세례를 통해 죄의 사함을 받은 아이가 은총의 빛 안에 살면서 영원한 생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양육해야 한다. 아이는 자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을 따르며 영원한 생명으로 숨 쉬고 양육되며 그 생명을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다.
일종의 심리적 위안을 위해 유아세례를 선택하는 것은 유아세례를 통해 부모에게 주어지는 책무를 망각할 위험이 있다. 유아세례는 단순히 죄를 씻는 예식도, 영원한 생명을 위한 티켓도 아니다. 악으로 기울기 쉬운 연약한 본성을 지니고 태어난 아이가 앞으로 죄와 악에 저항하여, 그리스도의 빛 속에 사는 신앙의 길을 걷도록 하는 예식이다. 교회는 유아에게 세례를 베풀도록 함으로써, 아이가 죄와 악의 현실에 맞서 하느님 자녀로서 고귀하고 거룩한 삶을 살도록, 교회와 부모에게 거룩하고 기쁨 넘치는 책무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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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택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