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경 출생 및 예루살렘 성 밖에서 순교. 초기교회 일곱 부제 중 하나, 그리스도교 첫 순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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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성경에 등장하는 그리스도교의 첫 번째 순교자 스테파노 성인의 이름은 ‘승리의 화관’, ‘월계관’, ‘영광’이라는 뜻을 지녔습니다. 이 그리스식 이름으로 보아 스테파노는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디아스포라 유다인으로 여겨집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율법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사도 6,11) 그룹에 속했습니다.
스테파노는 성령과 지혜, 믿음과 은총이 충만한 사람으로, 예루살렘의 유다인 출신과 그리스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의 세속적인 요구에 부응하도록 사도들로부터 선발된 일곱 부제 중 한 명입니다. 스테파노는 사도들에게 안수를 받았고, 백성들 앞에서 놀라운 일과 큰 기적을 많이 행했습니다.
또한 그는 키레네와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유다인으로 구성된 일명 ‘자유인의 회당’에 속한 몇몇 사람들과 논쟁을 벌였는데, 이들은 스테파노를 감당할 수 없음을 알고 사람을 매수하여 그가 모세와 하느님을 모독했다는 거짓 소문을 퍼트렸습니다. 결국 스테파노는 체포되어 의회에서 스스로를 변호하는 설교를 하게 됐습니다. 스테파노의 말을 들은 의회 회원들은 오히려 분노하며 그를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스테파노는 도시 외곽에서 돌을 맞고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습니다(사도 6─7장 참조). 사도행전 8장 2절에는 경건한 사람들이 스테파노의 장사를 지냈다고 언급되어 있으나, 그의 무덤이 어디인지는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415년 8월 3일에는 루키아누스 신부가 예루살렘과 15㎞ 정도 떨어진 카프르 가말라에서 스테파노의 유해를 발견했습니다. 이 유해는 현재의 스페인인 에스파냐 메노르카, 아프리카의 히포, 예루살렘, 시온, 콘스탄티노플을 거쳐 로마 등으로 나뉘어 전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각 도시에 보관된 유해 위에 스테파노 기념 성당이 건축되어 이 성당들에서 많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로 인해 스테파노 유해에 대한 공경은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갔습니다. 서방 교회에서는 9세기경부터 1955년 공식 전례에서 제외될 때까지, 스테파노의 유해가 발견된 8월 3일을 ‘성 스테파노의 유해 발견 축일’로 기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