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보스코 성인은 살레시오 수도회와 수녀회를 설립한 ‘돈 보스코’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1841년 사제가 된 보스코는 이탈리아 사르데냐 왕국의 수도 토리노에 있는 사제 연수원에서 신학과 현대 사목에 관한 연구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정치적 부흥 운동과 산업화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보스코는 그 중심지인 토리노에 있는 동안 뒷골목을 방황하는 소년들, 전쟁고아들, 교도소에서 만난 수많은 청소년, 공장에서 비인간화되어 가는 소년 노동자들의 실태를 파악하고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사제가 된 그해 12월 가난한 벽돌공 가렐리와 만나게 된 그는 함께 무릎을 꿇고 성모송을 바치며 십자가를 긋는 법과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이유를 설명해줬는데, 이것이 보스코가 세운 주일학교의 마중물입니다.
보스코는 연수원을 졸업하고 ‘소녀들 보육원’의 담당 신부로 부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소년들의 사목에 온전히 헌신하기 위해 보육원에서 나와 100여 명의 소년과 거처 없이 광장·목초지 등을 떠돌다 발독코에 정착했습니다. 보스코 신부는 주일학교를 시작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견습생들에게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고아들과 가출 소년들을 위해 카파소 신부와 자선가들의 도움으로 기숙사를 세웠으며, 직업학교와 기술학교도 시작했습니다. 일반 교육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기숙사 소년들을 외부 학교에 보내고, 이후 1856년에는 기숙사 내에 학교를 세워 교육하면서 청소년 교육사업을 확장시켰습니다.
보스코는 엄격한 규율이나 훈련을 피하고 아이들을 사랑으로 대했습니다. 각자의 성장과 발전 과정을 주도면밀하게 관찰하며 대응했고, 개성과 신앙을 격려해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로 길러냈습니다. 그는 사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비오 9세 교황 권고에 따라, 1859년 18명의 제자가 수도 서원을 할 수 있도록 인도했습니다. 이들로 인해 기초를 다지게 된 살레시오회는 1869년 정식으로 교황청으로부터 수도회 인가를, 1871년에는 회헌 인가를 받았습니다. 이듬해에는 소녀들의 교육을 위해 살레시오 수녀회를 창립했고, 1876년에는 살레시오 협력자회를 설립했습니다.
보스코는 1888년 1월 31일 “모든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고 아무에게도 악을 행하지 마십시오! (중략) 나의 아이들에게 천국에서 기다리겠다고 전해주시오”라는 말을 남기고 72세에 선종했습니다. 그의 묘비에는 ‘고아들의 아버지’란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는 청소년 교육의 선구자로서 교육자, 청년·청소년의 수호성인입니다. 또한 청소년 교육을 위해 많은 책과 잡지를 출판하고, 인쇄소를 적극 활용했기에 편집자와 교정자의 수호성인으로도 공경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