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나를 돌보는 시간인 피정은 그동안의 지친 몸과 마음을 돌보며, 치유하시는 주님과 함께 머무는 시간이다. 진정한 치유를 위해서는 자신의 내면을 주님 앞에 드러낼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마음속에 많은 상처를 안고 있으며, 다시 상처 입지 않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자기를 가리고 숨기며 살아왔기에, 상처 입은 자신의 깊은 내면까지 바라보고 그것을 드러내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한없이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신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온전히 자신을 열어드릴 수 있다면, 상처의 치유뿐 아니라 주님에게 받아들여지고 주님과 일치하는 친교의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상처 입을까 두려워하는 마음 이면에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주고 아무 조건 없이 나를 보듬어 안아줄 누군가를 바라는 마음이 자리한다. 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손가락질하거나 핀잔하지 않을,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이해하고 공감해줄 누군가를 바란다. 예수님이 바로 그런 분이시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장면은 복음서마다 다르지만, 그분께서 우정 어린 모습으로 친구처럼 제자들에게 다가가셨음은 한결같이 드러난다.(마태 4,18-22; 마르 1,16-20; 루카 5,1-11; 요한 1,35-51 참조) 예수님께서는 길을 걷다 우연히 눈이 마주친 사람을 불러 모으신 것이 아니라, 당신 제자로 부를 사람들을 눈여겨보셨고 그들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셨다. 그분은 서두르지 않고 때를 기다리셨다. 조용히 다가가셔서 말씀을 건네시며 대화를 나누고 관계를 맺고자 하셨다. 그들을 당신이 머무시는 곳에 초대해 함께 머무셨으며, 진실한 우정 관계를 맺고자 하셨다. 제자들이 선뜻 그분을 따랐던 것은 예수님의 이러한 우정 어린 모습 때문이 아니었을까.
“와서 보아라.”(요한 1,39)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주님과 함께 머물며 그분과 대화하고 친밀한 관계를 맺도록 초대되었다. 처음에는 막연함과 어색함이 있겠지만, 조금씩 그분을 알아가면서, 그리고 그분께서 얼마나 다정다감하고 따뜻하며 온화하고 자비로운 분인지 깨달아가며, 우리 마음을 온전히 열어드릴 수 있게 된다.
피정은 나 자신을 돌보는 시간이며, 주님과 함께하는 둘만의 오붓한 친교의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 그분과 만나,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그분 안에서 안식을 얻기 위해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놓으면 어떨까. 진정으로 친한 친구에게는 마음속 깊은 속사정까지 꺼낼 수 있는 것처럼, 마음의 벽을 허물고 그분께 우리 마음을 열어드리자.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그분께서는 우리 이야기를 듣고 손가락질하거나 핀잔하실 분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가 겪는 마음고생을 잘 아시고, 함께 괴로워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풀어주고 우리가 다시 일어서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는 분이시다.
잠시 침묵의 시간을 갖고, 조심스레 나의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있으면 좋겠다. 노트 하나를 준비해서 마음속에 흘러가는 이야기를 담아보자. 그동안 숨겨온 마음, 감추고 꾸민 마음, 나에게 맡겨진 책임들과 그로부터 오는 부담감, 세상일로 인해 갖게 되는 걱정과 근심거리, 타인으로부터 받은 상처들, 관계에서 오는 부담감 등, 모든 것을 주님께 털어놓자.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좋다. 한 번 마음을 열 수 있다면, 놀라운 기적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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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택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