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텔베르트 성인은 5세기 오늘날 영국의 크레이트브리튼 섬에 해당하는 브리타니아를 침입한 게르만족 중 하나인 주트족 헹기스트의 후손입니다.
아버지에게 켄트 왕국의 왕위를 이어받은 에텔베르트는 집권 초기 웨식스의 시올린으로부터 브리타니아 전체에 대한 통치권을 빼앗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해 프랑크족 메로빙거 가문의 샤리베르의 딸 베르타와 결혼해 정치적 입지를 강화했습니다. 베르타는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결혼 조건으로 신앙생활을 계속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고, 상리스의 레타르 주교를 대동했습니다. 에텔베르트는 왕국의 수도 캔터베리의 옛 성당인 성 마르티노 성당을 아내에게 선사했습니다.
한편 성 그레고리오 1세 대교황은 브리타니아를 침략한 픽트족, 앵글족, 색슨족, 주트족 등 이민족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기 위해 캔터베리의 아우구스티노 성인을 켄트 왕국으로 파견했습니다. 에텔베르트는 597년 켄트 해안에 도착한 아우구스티노를 정중히 맞이했습니다. 아우구스티노의 설교와 선교활동은 놀라운 성과를 가져왔습니다. 에텔베르트 또한 그의 설교와 모범을 보고 같은 해 주님 성탄 대축일에 여러 신하와 함께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로써 에텔베르트는 앵글로색슨족 가운데 최초의 그리스도인 왕이 되었습니다. 왕권이 절정에 다다랐던 당시 에텔베르트는 세례받은 후 앵글로색슨족 선교에 적극적인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영향을 받아 에식스의 왕과 앵글리아의 왕도 세례를 받습니다. 아우구스티노는 나중에 가장 문명화되고 영국에서 유일하게 복음화된 켄트 왕국에 대주교좌를 설정하고 캔터베리의 초대 대주교가 되었습니다.
에텔베르트는 604년경 「에텔베르트 법전」을 편찬했습니다. 대중 언어로 쓰인 법전에는 죄와 그에 따른 보속을 규정해놓기도 했는데, 누군가 ‘하느님이나 교회 물건을 훔쳤을 때는 12번, 주교의 물건을 훔쳤다면 11번, 신부의 것을 훔쳤을 경우엔 9번 기도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았습니다.
그는 오랜 재임 기간 선정을 베풀다 616년 2월 24일 선종했습니다. 에텔베르트는 아우구스티노가 캔터베리 도시 외곽에 설립한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수도원 성당에 베르타 왕비와 나란히 안치됐습니다. 에텔베르트는 2세기 이후 영국 땅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고 이민족들의 침략으로 파괴된 영국 그리스도교를 복원하는 데 선구자 역할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