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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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신앙체험수기] 장려상- 하느님을 만나면서 삶은 다시

서지현(아녜스, 독일 쾰른한인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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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어둠 속에서 조용히 호텔 로비를 향해 걸었다. 사위는 어둠 속에 묻혀 있었고 얕은 조명을 깔아놓은 로비는 살짝 흥분한 새벽의 아스라함을 풍겼다. 아직 아무도 나오지 않은 이른 시간, 폭풍 전야처럼 조용했지만 심장의 두근거림이 주위를 조금씩 흔들고 있었다. 잠시 후 리셉션의 불빛들이 하나둘 켜지고 저 멀리 이미 익숙해진 가이드의 움직임이 복도 끝에서 보였다. 잘 잤냐는 인사를 입으로 내뱉지도 못하고 눈으로만 말하는 그녀 역시 사뭇 긴장되어 있는 듯했다. 우리는 침묵 중에 새벽 공기를 나누며 다른 일행들을 기다렸다.

베들레헴 주님 탄생 대성전으로 향하는 길은 다른 일정과는 달랐다. 이곳은 러시아 정교회, 아르메니아 정교회와 함께 성당 소유권이 나누어져 있기에 약간의 분쟁들이 수시로 있고 그래서 미사 참배는 무산될 수도 있다고 했다. 오늘 어떻게 진행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기에 원하는 사람들만 새벽에 내려오라는 안내를 받은 터라 기도하는 마음이 더 간절했다. 5시로 예정되어 있는 작은형제회 수사님들의 구유 동굴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순례 일행들이 하나둘 로비로 모여들었다. 약속된 시간이 되자 헤드셋으로 속삭이듯 말하는 가이드의 목소리를 따라 우리들은 조용히 그림자처럼 이동했다. 그 누구도 개인적인 질문이나 잡담을 하지 않았다. 허리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는 대성전의 좁은 문을 지나 긴장된 발걸음으로 성전의 가장 끝 부분에 위치한 주님 탄생동굴 앞에 도착했다. 하지만 구유 동굴로 향하는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우리들은 잠시 그곳에서 기다리라는 안내를 받고 망연히 그 앞에 서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우리들은 다시 주님 탄생 성당과 연결된 가타리나 성당으로 이동해야만 했다. 수사님들의 미사가 시작되어야만 문이 열리기에 그 앞에서 여행자 무리들이 길을 막고 서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모두 개인 기도를 하며 대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성당은 어두웠다. 그저 희미한 불빛의 벽등과 촛불만이 큰 성당의 실루엣을 드러나게 할 뿐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의 내가 언제나 그러했듯 성당을 둘러볼 생각도 못 한 채 아무렇게 구겨져 고개를 떨구고 기도했다.

눈을 감고 조용히 침묵하고 있는데 눈앞으로 짙은 어둠이 펼쳐졌고 그 어둠 속에서 커다란 뱀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보였다. 환영처럼 눈앞에 펼쳐진 밤하늘엔 세 개의 붉은 눈을 가진 커다란 용 같은 두 마리의 뱀이 쉬익 쉬익 소리를 내는 듯 생생하게 내 앞에서 날아다녔다. 커다란 몸통이 코앞으로 다가오는 것만 같아 등골이 오싹해져 눈을 뜨려 했지만, 떠지지 않았다. 순간 나는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힘에 온몸이 덜덜 떨려왔다. 아무리 눈을 뜨려 해도, 떠지지 않았다. 이어 헤드셋으로 가이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유 동굴로 이동합니다.”

나는 일어설 수조차 없었다. 내 몸이 내 의지대로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그때 가이드가 귓가에 속삭였다. “무슨 일이야?” “눈이 떠지질 않아요.” 여행 내내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낸 가이드는 아주 침착하게 나를 이끌고 구유 동굴 입구 문 앞에 세웠다. 또다시 잠시 기다리라는 안내를 받는 동안 나는 성당 문 앞에서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주님, 문을 열어주세요.’ 닫힌 문 앞에서 죄의 용서를 빌고 자비를 청하는 마음이 아니라 거의 살려달라는 절규였다. 나를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 덤벼들어서 오는 공포는 아니었는데 쫓아다니는 그 붉은 눈의 뱀이 무서웠고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래서 문 안으로 들어가기만 한다면 더이상 어떤 공포도 나를 뒤쫓지 못할 거라는 확신, 하느님의 품만이 나의 피난처라는 믿음, 그런 것들이 본능처럼 닫힌 문을 두들겨댔다.

어린 시절의 나는 종종 물건이 되었다. 내가 눈만 감으면 아무도 나를 볼 수 없다 생각했고 나는 책상 밑에서 책상이 되었고, 벽에 껌처럼 붙어서 벽이 되곤 하였다. 벽의 세모진 모퉁이에 처박혀 눈만 감으면 다른 세상에 존재했다. 싫다는 소리 대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래서 가족들은 내게 ‘예스맨’이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모든 것에 ‘예’ 하고 답하는 착한 딸.

문이 열렸다. 안에서 수사님들의 라틴어 기도 소리가 천사의 소리처럼 퍼져 올라왔다. 얼굴이 온통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있어 앞이 잘 보이지도 않았지만 내려가는 길은 어둡고 좁았다. 좁은 구유 동굴 안은 사람들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나는 그 사이에 끼여 떠밀리기를 반복하다 쓰러지고 말았다. 나는 어쩌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엎드린 채 미사를 올렸다. 아쉽게도 우리들은 성체를 모실 수는 없으니 차례차례 줄을 지어 구유 경배를 하고 나오면 된다고 했다. 그제야 큰 산을 넘고 난 듯 감사와 기쁨이 몰려왔다. 신기하게도 나는 몸을 일으킬 수 있었고 눈도 떠졌다. 일행을 따라 앞으로 밀려 밀려 겨우 구유를 경배할 수 있었다. 너무 짧은 시간이었고 좀 더 머물고 싶었지만 허락되질 않았다. 예수님의 탄생 터가 온전히 가톨릭 신자들만을 위해 있을 수 없고 종교지파의 이권 다툼으로 얼룩져 있다는 말이 실감 났다.

입구 쪽으로 향하는 계단을 따라 밖을 향해 올라가면서 뒤를 돌아봤다. 그제서야 나는 그곳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구유 동굴은 내 상상과는 너무나 다르게 시장통 같았다. 여기 들어오기 전까지 나는 이곳에 천국이 펼쳐져 있을 거라 상상했었다. 예수님 탄생 터 또한 얼마나 성스러울까 잔뜩 기대했지만, 너무나 평범해 보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 어수선한 곳이, 거룩해 보이지도 않는 곳이 내겐 무덤 같았다. 그래서 생명과 죽음이 한순간이구나 싶었다. 그러자 마음 안에 가벼움이 환하게 피어올랐다. 저곳에서 눈물로 죄의 더러움을 벗겨냈고 이제 나는 아기처럼 새로 태어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은 다시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가타리나 성당으로 이동했고 거기서 또다시 성지순례 일정을 함께 시작하는 다른 일행들을 기다렸다. 깊은 물 속에서 건져 올려진 듯 온몸이 물로 가득 찬 느낌이었지만 나는 매우 순결하고 거룩해진 마음으로 한 발 한 발 발걸음을 옮겨 제대를 정면으로 하고 조용히 앉아 십자성호를 긋고 기도를 올렸다. 감사와 찬미 영광 받으소서, 그 순간 눈앞이 순식간에 밝아지기 시작했다. 눈앞으로 펼쳐진 하늘 위로 펜싱 칼 에페처럼 생긴 길고 가느다란 칼이 불쑥 보였다. 나를 노리던 그 뱀은 보이지 않았다. 아, 하느님! 숨이 막혔다. 그 충만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 전율과 환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눈을 뜨자 가타리나 성당의 제대 위쪽의 둥근 창 사이로 온통 빛으로 가득 찬, 빛 자체인 태양이 찬란하게 떠올라 있었다. 어둠을 삽시간에 몰아내고 태양은 자비로 충만한 하느님처럼 그 위용을 드러냈다. 성당 안은 빛의 물결로 거룩해졌다.

열흘간의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마치고 첫 평일 미사였다. 성당 가는 길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진 나는 평소에 잘 앉지 않는 제일 앞쪽에 자리를 잡고 잠시 기도를 하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입당 성가를 안내하는 사회자의 소리를 듣고 기도를 마치려는데 눈이 떠지지 않았다. 순간 당황하였는데 또다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눈물이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내리는 통에 너무 당황해서 다른 사람들이 눈치챌까 싶어 닦아낼 수조차 없었다.

이건 뭐지, 그냥 드는 생각에 조용히 눈을 감은 채 넋을 놓고 있는데 신부님의 제의가 펄럭거리며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미사가 시작되는구나 싶어 두 손을 모으고 막 성호를 그으려는 순간이었다. 신부님이 ‘성부와’라고 하자 갑자기 눈앞에 베들레헴에서 본 그 칼이 내 심장을 가르며 꽂혀 들어왔다. 세 번의 간격을 두고 쑤욱 쑤욱 깊게 박히는 소리까지 들렸다.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순간 모든 것이 정지해버렸다. 칼을 부여잡고 미사를 봉헌하는데 주변이 느껴지지 않았다. 작은 경당에서 봉헌하는 미사는 신자 수가 얼마 되지 않아 오래 걸리지 않았고 미사가 끝나면 그저 고백성사를 해야겠다 싶었다. 이스라엘에서 돌아올 때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거룩한 칼 때문에 성녀가 된 듯 교만했구나 싶었고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그때의 나를 보았던 한 자매님은 내 얼굴이 너무 창백해 곧 쓰러질 듯 보였다고 했다. 또 그때 미사 후에 총 고백성사를 한 시간가량 해주신 신부님은 훗날 그 날을 기억하고 계셨다. 미사를 집전하러 들어서는데 맨 앞에 앉아있는 한 자매가 이상하게 불쌍해 보여 시선이 갔다고 했다. 까리따스 일을 하시는 그 신부님은 불쌍한 사람이 많이 만나는데 그 날의 나는 자신이 만나온 사람 중에 가장 불쌍해 보였고 그래서 기억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마치고 그 어느 때보다 행복했었기 때문에 그렇게 보였다는 게 신기했다. 슬프거나 두렵지 않았고 그저 당황스러웠을 뿐이었다. 내게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뿐이었다. 성지순례를 마치면서 가이드도 그날의 새벽을 기억했다. 이십 년을 넘게 성지순례를 안내하며 많은 신자들을 만나는데, 가끔 하느님께서 무슨 일인가 하시는구나 싶은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그날 아침에 그렇게 보여 내 곁에 머물러 있었다고 했다.

그랬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때는 알지 못하는 일이. 나는 고해성사를 하며 그 칼이 나를 지키는 칼이라 했고 고해 사제는 내게 그 칼이 나를 산산이 찢을 것이라 했다. 중학교 2학년 때 가톨릭 학교에서 단체로 세례를 받고 대학 다니며 냉담자가 되어 살아온 내가 다시 돌아온 탕자처럼 성당으로 돌아온 지 5년도 안 되었기에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2003년 12월 23일 교통사고가 났다. 아이 둘을 태우고 내가 운전해서 시댁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아들을 잃고 아홉 살 난 딸은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나는 몇 군데가 찢어진 상처 말고는 멀쩡하게 살아남아 아들의 장례를 치러야 했다. 뇌압이 차면 바로 수술해야 하고 생명이 오가는 수술 동의서에 서명하려면 반경 2㎞ 내에 있어야 하는 중환자실 보호자가 되었다. 코마 상태의 딸을 살리는데 온통 매달린 나는 아들도 제대로 보내주지 못하고 가슴 밑바닥에 꽁꽁 숨겨두었다. 내게서 아들은 죽지 않았다. 내가 보내지 않았는데 죽을 수 없다 생각했다. 그 생각은 죽은 영혼을 되돌리는 주문을 외우는 데 전념하게 했다. 불가에서는 49일 동안 영혼이 구천을 떠도는데 그 영혼을 위해 계속 기도하고 주문을 외우면 다시 태어나게 된다고 했다. 나는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따지지 않았다. 내겐 시간이 없었다.

엄마는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 엄마가 독실한 불교 신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그녀는 내림굿을 받아야 하는 신기가 있었고 그것을 거부하면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고 믿었다. 그래서 무당이 되느니 불가에 귀의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젊은 날을 보냈고 나는 늘 비어있는 집에서 엄마가 그립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살았다. 그런 엄마가 드디어 내림굿을 받기로 결정했고 엄마는 집에 신당을 차렸다. 그리고 나는 냉담자가 되었다.

엄마가 집에 없던 시절, 집에서 학교로 가는 길에 성모당이 있었다. 가톨릭 학교에 다녔던 나는 성모님을 엄마처럼 생각한다는 종교 시간 수녀님 말을 듣고 종종 성모당을 갔다. 그곳에 있으면 너무나 편했다. 열세 살의 나는 허락도 없이 엄마의 빈자리에 성모님을 모셨다. 그리고 세례를 받았다. 엄마는 내게 엄마로서 자격이 없기에 종교의 자유를 주었다. 그러나 이제 엄마 행세를 하려는 그녀는 내게서 그 자유를 거두어갔다. 그것이 비록 내 의지였지만 고등학교를 마치고 수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단칼에 잘렸고 예스맨인 나는 바로 생각을 접었다. 매일 새벽 6시 고3 수험생이 성당에 가서 했던 기도는 하루아침에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교통사고로 시각장애인이 된 딸은 어린 시절 화가로서 가졌던 재능을 음악으로 표현했다. 아이는 24시간을 음악과 함께 했고 음악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차 안에서 자신이 요즘 즐겨 듣는 노래라며 들려준 노랫말 안에 ‘하느님’이라는 단어가 나를 쳤다. 누구 앞에서도 심지어 나 자신 앞에서도 울 수 없었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는 여전히 법복 같은 옷을 입고 아들의 죽음으로 울 자격조차 없는 죄인처럼 무릎이 닿도록 매일 백팔 배를 하며 지냈다. 무당으로 비록 3년밖에 살지 않았지만, 엄마는 여전히 나의 모든 영혼을 지배하고 있었고 엄마의 말에 무조건 복종했다. 엄마는 ‘죽은 아들을 위해 10년 동안 제를 올려야 한다’고 했고 그렇게 살기로 마음먹었었다. 그런 내게 하느님이 다시 찾아오셨다. 내 생각,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2008년 우리는 독일로 이민을 갔다. 아는 사람도 하나 없고 영어도 독일어도 못하는 나는 한 살 난 아이를 포대기에 들쳐 업고 종종걸음으로 걷는 세 살 딸아이와 시각장애를 가진 열세 살 딸을 데리고 베를린에서 한국식당을 열었다. 인천공항에서 나는 이미 알았다. 내가 비행기를 타고 이 땅을 떠나는 순간부터 하느님께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아주 자연스럽게 모든 것이 진행되었다. 그 노래로 하느님이라는 이름을 다시 만났고 딸은 음악적 재능으로 독일 유학을 꿈꾸게 되었다. 아들을 중요하게 여기는 유교 집안에서는 딸만 셋인 내가 한 선택에 찬성했다. 독일에서 유일하게 힘이 되어줄 하느님이 계시기에 모든 것이 가능했다.

식당 운영은 힘든 일이었지만 처음부터 주일은 문을 닫는 원칙을 정했기에 내게 주일은 유일하게 하느님과 보내는 날이 되었다. 주변 가게가 주일에 문을 연다고 하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밤 12시가 다 되어 집으로 향하는 길은 묵주 기도를 5단 바치고 나면 도착했고 비록 성당의 신심단체에서 활동하진 못했지만, 주일은 내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가게도 안정이 되어가고 아이들도 잘 자라주었고 큰딸은 여러 가지 문제를 겪었지만 아슬아슬하게 넘어가 주곤 하였다.

2015년 여름이었다. 늘 아이들과 함께 지내주지 못하는 게 미안해서 1박 2일의 주일학교 여름 신앙학교를 매번 참석해 성당행사를 도와왔었다. 그런데 그 해에는 특별히 보조교사로 자청해 봉사를 했다. 그날 밤, 아이들이 모두 텐트로 들어가 잠이 들자 나는 오랜만에 선생님들과 함께 밤늦게까지 담소를 나누었다. 그러다 텐트에서 소란스러움이 일었고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가고 신부님과 나만 그 자리에 남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하느님께서 다시 나를 일으키셨던 시간으로 기억된다. 별이 유난히도 많아 마치 샘이 난 듯 초록의 나무들이 바람 끝을 흔들어댔지만, 그 반짝임이 온 우주를 정지시켜버릴 듯한 여름밤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독일에 오게 된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사고 이야기를 꺼냈다. 신부님은 죽은 아들의 이름이 뭐냐고 물었고 나는 그 순간 말을 잇지 못한 채 펑펑 울었다. 내 안에 꽁꽁 숨겨두었던 봇물 같은 눈물이 밤새도록 흘렀다. 나는 그제야 죽은 아들과 이별을 했다. 사고 때 이미 나는 죽은 존재였고 12년 동안,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나는 없고 살아남은 자로서 해야 할 책임감과 의무만이 있는 허깨비, 성경에서 말하는 그저 살덩어리에 불과했다.
 

신부님은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싶어 하신다 했다. ‘딸아, 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용기를 내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신청했다. 주방장으로, 또 운영자로서 가게를 열흘간 비우는 일을 불가능했다. 아이들 학교 보내는 일도, 그밖에 떠안은 많은 문제들은 절대로 나를 이스라엘로 보낼 수 없었지만, 하느님께 매달리고 또 매달렸다. 당신을 만나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내가 누구인지,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그런 나를 사랑한다는 당신은 누구인지 너무 궁금했다. 그곳에서 모든 의문들을 풀어주고 나를 위로해주실 당신이 기적을 행하시리라 굳게 믿었고 나는 그곳으로 가게 되었다.

하느님을 만나면서 삶이 다시 시작된다고 하였던가. 이스라엘 성지순례 후 내 삶은 달라지고 있다. 하느님 없이는 나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에 모든 의사결정에 있어 하느님을 항상 먼저 둔다. 하느님께서 주신 그 칼이 나를 더 산산이 부서뜨리길 기도한다. 내 의지와 생각이 땅바닥에 짓밟히고 사람들이 나를 벌레처럼 취급하고 더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곤두박질치게 할 때 하느님은 항상 함께해 주시며 나를 존귀하게 만드신다.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하는 순간에도 악을 선으로 이끄시는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변화시키신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기적은 하느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숨은 그림들의 퍼즐을 성경에서 하나씩 발견할 때 그 현존하심을 깨닫게 된다. 다 부서져 파편같이 쓸모없이 보이는 사소한 삶의 조각들이 성경과 만나고 제 빛을 찾아가는 매 순간이 내겐 기적이다.



서지현(아녜스, 독일 쾰른한인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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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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