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 온전히 신뢰를 두는 길은, 완전한 믿음이라는 이상에서가 아닌, 완벽하지 못한 우리의 믿음을 인정하며 출발하는 것이다.
부활에 우리가 처음 접하는 복음 말씀은 놀랍게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도 믿지 않고 의심을 품었던 제자들의 이야기다. 이는 제자들의 약한 믿음을 탓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믿음이란 것이 나약한 인간 본성을 관통하는 것이기에 나약한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임을 말해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부활절이 되었다고 없던 신앙이 갑자기 생기는 것은 아니다. 제자들의 부활 신앙은 빈 무덤에서 시작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의 믿음은 당혹스러움·놀라움·의심의 순간을 거쳐야 했으며, 절망에 빠진 그들에게 다가와 말씀을 나누시며 격려해주시는 주님과의 동행 속에서 자라는 것이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과 걷던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불신앙을 꾸짖으며 말씀하신다.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루카 24,25) 그러나 질책으로 끝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을 풀이해주시며 그분이 겪으신 수난과 죽음이 실패가 아닌 그리스도께서 이루셔야 할 사명이었음을 일깨워주신다. 또한 제자들과 함께 집으로 들어가 빵을 나누어 주며 친교를 이루신다. 그분께서는 제자들의 마음에 사랑의 불을 놓으시고, 희망의 불을 지피시며, 신앙의 눈을 밝혀주고 계셨던 것이다.
우리의 믿음은 어떠한가? 제자들처럼 좌절과 절망에 빠져 있거나, 무디고 단단한 마음으로 살지는 않나? 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인가? 잘 믿고 있는 것인가? 자연스럽게 던지는 이 질문들은 자책이 아닌 더 멀리 걸어가기 위해 던져야 할 질문들이다. 우리의 부족한 믿음을 숨길 필요 없이, 우리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사실 우리보다 먼저 이 길을 걸은 신앙의 선조들, 심지어 성경에 등장하는 예언자와 사도들조차도 우리처럼 나약한 믿음에서 시작하였고, 좌절과 절망을 겪어야만 했다. 그러나 거기 머물러 있거나 포기하지 않고, 더 멀리 가기 위해 하느님께 계속해서 매달렸으며, 부족하나마 신앙의 길을 계속해서 걷고자 하였다. 하느님을 찾고 자신을 찾는 그 길에서 그들은 하느님의 새로운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고, 자신 안에 일어나는 놀라운 변화를 경험할 수 있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에게서 하느님의 권능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좌절과 절망, 죽음을 뚫고 일어서는 불멸의 희망을 맛보기 위해서는, 우리는 이 ‘파스카 여정’, 곧 예전의 나에서 탈피하고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는 변화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것이 신앙의 진리이며 인생의 진리다. 우리의 부족한 믿음을 탓하고 실망할 필요가 없다. 살면서 삶을 배우듯, 우리는 부족하고 나약한 믿음을 살면서 믿음을 배우는 것이다.
부활을 맞아 우리의 부족한 믿음을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의 우리 자신을 하느님께 보여드리면 어떨까. 부활을 믿지 못해도, 부활이 기쁘지 않아도, 그것이 하느님께 나아가지 못할 결격사유는 아니다. 믿음은 강요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나의 부족한 믿음을 인정하고, 주님께 믿음을 키워달라고 청하면 좋을 것이다. 그럴 때 믿음은 성장하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완벽한 믿음을 요구하지 않으신다. 다만 포기하지 말고 당신과 함께 걷기를 바라신다. 이야기를 나누며 그분과 사귀기를 바라신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우리의 소명인 거룩함의 성소를 발견하고, 나날이 성장해가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 ‘금쪽같은 내신앙’ 코너를 통해 신앙 관련 상담 및 고민을 문의하실 분들은 메일(pbcpeace12@gmail.com)로 내용 보내주시면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
한민택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