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140?~202년경, 튀르키예 출생 및 프랑스 선종, 리옹의 제2대 주교, 일치의 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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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레네오 성인은 유아세례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한 교부입니다. “인간은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 안에서 새로 태어나며, 따라서 어린아이도 모두 세례를 받아야 구원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레네오는 오늘날 튀르키예 이즈미르 출신으로 이탈리아 로마에 오랫동안 머물렀고, 이때 유스티노 성인이 세운 교리 학교에서 공부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프랑스 리옹으로 갔습니다.
리옹에서 사제품을 받은 그는 177년 특사 자격으로 성 엘레우테리오 교황을 예방한 뒤 몬타누스파 이단에 대해 상의하고, 리옹 지방 순교자들에 대해 보고했습니다. 몬타누스파는 세계 종말을 예언하고 엄격한 금욕주의를 실행한 이단입니다. 이레네오는 로마에 체류하는 동안 포티노 주교가 순교해 리옹의 제2대 주교가 되었습니다. 이후 20여 년간은 다행히 박해가 멈춰 선교사업에 전념할 수 있었고, 그의 노고로 리옹 시민 거의 대부분은 그리스도교로 개종했습니다.
리옹 지역 복음 선포에 열정적이었던 이레네오는 프랑스에 널리 퍼져있던, 오직 선택받은 자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영지주의 이단과도 치열한 싸움을 전개했습니다. 이때 그가 쓴 책이 「이단 논박」입니다. 이레네오는 이단 사상의 정체를 적나라하게 폭로하면서 동시에 초기 교회의 정통 신앙을 확립했습니다. 이레네오는 ‘가톨릭교회의 수호자’라고 불릴 정도로 2세기 신학자 중 가장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저서 「이단 논박」과 「사도적 선포의 증명」에서 사도들의 전승을 충실히 전했고, 그리스도 중심의 사상을 펼쳤으며 로마 교회의 수위권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교는 로마 교회와 일치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동·서방 교회 일치와 평화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특히 성 빅토르 1세 교황이 로마와 같은 날짜에 부활 대축일을 지내지 않는 안티오키아 신자들을 파문하자, 동방 교회의 전통을 잘 알고 있던 이레네오는 그들은 고대의 관습을 따른 것뿐이라며 평화를 보존토록 했습니다.
그레고리오 성인은 이레네오가 202년경 리옹에서 순교했다고 전했습니다. 이레네오의 적극적인 선교로 리옹교구가 번성하고, 이단의 기세도 꺾일 무렵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의 박해가 다시 고개를 들었습니다. 이로 인해 리옹에서 수많은 순교자가 나왔고, 이미 고령이었던 이레네오 또한 순교의 대열에 장렬히 참여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2년 1월 21일 동방에서 태어난 서방 주교 이레네오에게 ‘일치의 학자’라는 칭호를 부여하고, 교회 학자로 선포했습니다. 정교회에서는 8월 23일 그의 축일을 기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