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자녀로 거룩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우리는 저마다의 삶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시편 저자의 다음 말씀에도 같은 경험이 배어 있다.
“젊은이가 무엇으로 제 길을 깨끗이 보존하겠습니까? 당신의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시편 119,9)
나약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하느님 말씀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분명한 것은 하느님과의 관계요, 삶의 전반적 기획인 신앙이 인간의 나약함을 관통한다는 점이다. 우리의 나약함은 부정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사정이 그렇다면, 나약함 없는 완전무결한 신앙이 아닌 나약함을 안고 계속해서 완덕을 향해 가는 것이 하느님의 뜻 아닐까.
그런데 실은 신앙만이 아닌 우리 삶 전체가 나약함으로 점철되어 있다. 특히 인간관계가 그러하다. 우리는 배신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상처와 아픔을 경험했던가. 우리가 경험한 사랑은 얼마나 나약한가. 그런데 그 사랑은 얼마나 아름답고 또 얼마나 강한가.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사랑의 기쁨」 113항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우리 모두는 빛과 그림자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존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 저는 상대방의 사랑의 진가를 알려면 그 사랑이 완벽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은 자신의 능력껏 최선을 다하여 나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그 사랑이 거짓이라거나 참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한계가 있고 현세적이라고 하여도 그 사랑은 참된 것입니다. (?) 사랑은 불완전함을 지니고 용서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교황님의 말씀에 담긴 ‘한계’, ‘완벽하지 않음’, ‘불완전함’은 모든 사람이 경험하는 것이다. 이는 부부만이 아니라 수도자나 사제도 마찬가지다. 각자 신앙을 살면서 자신의 한계, 불완전함과 나약함을 경험한다. 그래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불완전한 우리를 성화시켜주시는 하느님과 함께 길을 걷는 신자들의 기도와 응원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믿음과 사랑이 나약해도 거짓이 아닌 참된 것이었음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나약함을 안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인간의 나약함을 인정하시고, 바로 그 나약함을 통해 당신의 구원을 이루신다. 하느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늘 새로운 시작을 알리시고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걷자고 제안하신다.
우리의 나약함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때, 우리 삶은 전혀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자신에게 얼마나 실망하며 살아왔던가. 그리고 나약함을 감추기 위해 얼마나 많은 힘을 소모했던가. 그런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가, 나약하고 한계 지어진 우리 존재 자체가 선하고 아름다우며, 하느님의 눈에 고귀한 존재라고 말이다.
우리는 약하다. 상처 입기 쉬운 존재다. 그러나 우리는 약해도 된다. 그런 존재를 사랑으로 보듬어 안아주고 치유하시며 함께 걸으시는 하느님께서 계시기 때문이다. 그 사랑은 새롭게 창조하는 사랑이며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사랑, 상처 입을 것을 무릅쓰는 사랑이시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류를 구원하시는 사랑이시다. 모든 것이 주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지기에,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녀와 함께 늘 새롭게 시작하시는 분이시기에, 우리는 그분께 자신을 내맡기며, 용기를 내 앞으로 발을 내디디면 된다.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채워주실 것이다.
한민택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