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1~1556년, 스페인 출생 이탈리아 선종, 예수회 설립자, 피정과 영성 수련의 수호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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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 설립자이자 피정과 영성 수련의 수호성인 이냐시오는 군인이었습니다. 1521년 에스파냐(스페인) 나바라의 팜플로나에서 프랑스군과 전투 중 상처를 입었는데, 이때 삶의 중대한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성채를 점령한 프랑스군이 그를 치료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로욜라 성에 있는 가족들에게 데려다 준 것입니다.
이냐시오는 상처를 회복하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삶에 관한 책을 읽으며 성인들의 모범을 따르는 삶 속에 참된 기쁨과 평화가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즈음 이냐시오는 아기 예수님을 안고 계신 성모 마리아의 환시를 봤습니다. 이를 통해 지난날의 생활, 특히 세속적인 욕망을 따르던 행실에 회의감을 느끼고 회심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이냐시오는 1522년 3월 25일 만레사마을 근처 동굴로 거처를 옮겨 탁발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저서로 유명한 「영성 수련」의 뼈대가 바로 이 시기에 형성되었습니다.
순례 뒤 이냐시오는 약 11년간 학문에 정진했습니다. 이냐시오의 연학 기간 중에는 수많은 시련이 있었지만, 동시에 동료들을 규합하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을 만났습니다. 이냐시오는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9명의 동료와 모였지만, 당시 튀르키예와의 전쟁으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1537년 6월 24일 동료들과 그곳에서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같은 해 겨울 이냐시오는 베드로 파브르 성인과 라이네스와 같이 교황을 만나기 위해 로마로 향하던 중 환시를 체험했습니다. 성부께서 그를 예수 그리스도와 한자리에 있게 해주시는 환시였는데, “내가 로마에서 너희에게 호의를 보여주리라”라는 말씀을 들었다고 합니다. 이냐시오와 동료들은 자신들을 ‘예수회’(예수의 동반자라는 뜻)라 불렀으며, 바오로 3세 교황은 이들을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이냐시오는 1541년 4월 예수회의 초대 총장으로 선출돼 그와 동료들은 로마의 성 바오로 대성전에서 장엄 서원을 했습니다.
예수회는 즉시 선교 지역으로 나갔고, 수도원과 학교·대학교·신학교 등을 전 유럽에 세웠으며, 교육과 지적인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드러냈습니다. 당시 이냐시오와 동료들이 세운 세 가지 목표는 교육에 힘쓰고, 자주 성사를 받음으로써 교회를 개혁하고, 선교지에서 폭넓은 활동을 전개하며 이단과 싸운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예수회 활동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이냐시오는 1555년 로마에서 열병에 걸려 7월 31일 선종했습니다. 그의 시신은 로마에 있는 한 성당에 안치됐다가 1568년 기존 성당을 헐고 그 자리에 새로 건축한 예수회 성당으로 옮겨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