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 루이스 성인은 성공회 신부이자 중학교 교장인 아버지 모건 루이스와 가톨릭 신자인 어머니 마가렛 프리차드 사이에서 아홉 자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성공회 신자로 성장한 다윗은 16세 때 프랑스 파리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게 됩니다. 이후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영국 학교에서 사제가 되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당시 많은 가톨릭 사제들이 했던 대로 ‘찰스 베이커’라는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1500년대 종교개혁과 영국 성공회 탄생 이후 반가톨릭 정서가 팽배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1642년 7월 20일 사제품을 받은 다윗은 3년 뒤 예수회에 입회하여 수련기를 마치고 영국의 선교사로 파견되었습니다. 그는 몬머스셔에서 30년 동안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곁을 지켰습니다.
다윗이 활동하던 웨일스 지방에서 가톨릭을 반대하는 운동이 거세게 일어나 그는 몸을 피해야 했지만, 오래지 않아 1678년 11월 17일 몬머스셔의 성 미카엘 성당에서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사제로서 미사를 봉헌했다는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동시에 요한 켐블 성인처럼 1678년 발생한 티투스 오츠의 ‘가톨릭 음모 사건’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찰스 2세 왕을 암살하고 웨일스 지방에 가톨릭을 부활하려 했다는 혐의였습니다. 오츠의 가톨릭 음모 사건은 찰스 2세 왕이 직접 오츠를 심문해 모든 것이 거짓임이 밝혀졌으나, 그 여파는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다음과 같이 설교했다고 합니다. “나는 양심과 신앙을 위하여 죽는다. 인간의 나약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외면은 죽일 수 있으나 내면은 결코 죽일 수 없다. 이제 나의 몸과 피는 화형을 당할 준비를 마쳤다. 나는 그대들을 용서한다. 내가 복음의 아들임을 고백하며, 순종하는 것은 복음이다. 형제자매들이여, 하느님을 두려워하라. 그대들의 왕에게 영광을 드려라. 나는 끝까지 여러분의 믿음이 올바르게 되도록 기도하겠다.” 성난 군중들은 그에게 돌을 던졌습니다. 다윗은 어스크 강변 처형장으로 끌려가 1679년 8월 27일 교수형과 극형을 받고 순교했습니다.
다윗은 1929년 12월 15일 비오 11세 교황에 의해 시복되고, 1970년 10월 25일 성 바오로 6세 교황에 의해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40위 순교자’ 중 한 명으로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그의 축일은 순교 날인 8월 27일에 기념하고, 시성 후에는 40위 순교자의 일원으로서 10월 25일 시성일에 기념해왔습니다. 2000년 잉글랜드와 웨일스 교회의 새 전례력이 교황청에서 승인된 후에는 40위 순교자들의 축일은 5월 4일로 옮겨져 종교개혁 시대에 순교한 모든 복자·성인과 함께 ‘영국의 순교자’라는 이름으로 전례 안에서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날은 종교개혁 시대 영국에서 순교한 영국 성공회의 순교자와 성인들의 기념일과 같은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