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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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 대한 숙고가 필요한 이유

[한민택 신부의 금쪽같은 내 신앙] (64)생각하는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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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신자들의 ‘비지성적 신앙’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가톨릭교회 내부에서 공통으로 제기되는 문제다. 그러나 어디 가톨릭 신자뿐이랴. 개신교를 비롯한 한국 대부분 종교인에게 해당되는 문제일 것이다.

비지성적 신앙이란 신앙에 대한 이성적 숙고 없이, 계명 준수나 주일 미사 참여로 만족하는 신앙행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미사 참여와 같은 계명 준수는 신앙생활에서 중요하지만, 그 자체에만 머무른다면 큰 문제일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믿는지, 그 믿음이 나의 삶, 내가 사는 세상과 어떻게 상관하는지 등에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삶과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신앙은 신앙주의나 근본주의 혹은 사적 계시 중심의 그릇된 신심이나 신흥 유사종교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신앙에서 이성이 지닌 중요성과 가치를 계속 강조해왔다. 오늘날 세속화 흐름이 가속화되고 과학기술과 진화론적 사고가 팽배한 시점에, 그리스도인은 스스로 신앙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요청받는다.

자신의 신앙에 대해 숙고해야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맡겨진 복음 선포 사명 때문이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우리가 믿는 믿음이 어떤 것인지 깊이 숙고해야 하며,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게 전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우리가 지닌 희망에 관해 해명할 것을 세상 사람들로부터 요청받는다. “여러분이 지닌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해 두십시오.”(1베드 3,15) 우리는 갖가지 위기와 도전 앞에 선 이 시대에 어떤 희망에 관해 이야기할 것이며, 그 희망이 이 시대 사람들에게 진정한 희망으로 다가갈 수 있다고 확신하는가?

신앙 숙고는 자녀에게 신앙을 전수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자녀들은 커가면서 왜 성당에 나가야 하는지 묻는다. 왜 자기 의사도 묻지 않고 세례를 받게 했느냐고 따지기도 한다. 이는 단순히 종교로 인해 부모와 다투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들이 납득할만 합리적인 이유를 듣고 싶기 때문이다. 오늘날 그리스도교 신자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자녀들에게 신앙의 의미와 가치를 전할 수 있을 만큼 신앙에 대해 깊이 숙고하고 있는가?

궁극적으로 생각하는 신앙의 필요성은 신앙 자체에서 비롯된다. 신앙은 체험인 동시에 관계이며 앎이다. 앎에는 이성의 역할이 중요하며, 알면 알수록 믿음이 더 깊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것은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할 때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고자 하고, 서로를 알면서 사랑이 더 깊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신앙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자신이 믿는 바를 이해하는 것이며, 그것이 나 자신의 삶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헤아리는(해석하는) 것이다. 우리의 삼위일체 하느님께 대한 신앙고백은 나의 삶과 관련하여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나의 고백이 아직 막연한 교리 지식에 머문다면 나의 신앙은 성장하기 어렵다.

신앙을 생각한다는 것은, 신앙뿐 아니라 자기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가 믿는 바는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믿음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삶을 새롭게 바라보고 삶을 새롭게 기획하게 된다. 우리가 하는 일, 만나는 사람, 우리 자신을 새로운 눈으로 보고 새로운 관계를 맺게 한다. 생각하지 않는 신앙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맴도는 신앙이며, 무미건조하고 지겨운 신앙에 머물 수 있다.





한민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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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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