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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성인] 오상의 비오 성인 (9월 23일)

1887~1968년, 이탈리아 출생 및 선종,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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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의 비오 성인. 출처=CNS 자료 사진


예수 그리스도의 다섯 상처를 가진 것으로 유명한 오상의 비오 성인은 태어난 지 하루 만에 ‘프란치스코’로 유아세례를 받았습니다. 어려서부터 매일 미사에 참여해 기도와 묵상을 즐겼던 그는 10살 때 사제가 되기를 소망했습니다.

 

12살이 된 비오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마을의 사립 중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4년 뒤 베네벤토대교구 모르코네에 있는 카푸친 프란치스코회(작은형제회)에 입회해 ‘비오’라는 수도명을 받았습니다. 1907년에는 종신서원을 하고, 1910년 8월 23세에 사제가 됐습니다.

 

이듬해에는 비오의 두 손, 특히 왼손에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생긴 상처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상처에 지나지 않았던 오상은 점점 커졌습니다. 그가 오상을 받았다는 소문은 급속히 퍼져 산 조반니 로톤도 수도원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비오는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오해와 의혹의 눈총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비오는 1923년 6월 17일부터 외부인과의 접촉을 금지당해 수도원 내의 경당에서만 홀로 미사를 봉헌해야 했고, 그에게 오는 편지의 답장도 할 수 없었습니다. 비오는 그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며 기꺼이 교회에 순명했습니다. 비오는 격리 기간 미사 집전과 기도로 대부분 시간을 보내다가 1933년 7월 16일부터 다시 성당에서 공개적으로 미사를 봉헌할 수 있게 됐습니다. 비오는 1968년 9월 22일 오전 5시에 마지막 미사를 봉헌하고, 다음날 세상을 떠났습니다.

 

비오는 생전 “책 속에서 우리는 하느님을 찾는다. 하지만 우리는 기도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한다. 기도는 하느님의 마음을 여는 열쇠다”라고 했습니다. 신앙은 그가 알 수 없는 하느님의 뜻마저도 받아들이게 인도했습니다. 그는 초자연적인 현상과 고통 속에서 하느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하느님 사랑을 증거했습니다. 또 겸손과 순명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비판과 오해를 풀어나갔습니다.

 

그가 선종한 지 3년이 되었을 때쯤,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카푸친회 장상들과 이야기하며 비오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오 성인이 얻은 명성을 보십시오. 그분 주위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왜 그렇겠습니까? 그가 철학자이기 때문에? 현명해서? 아닙니다. 그가 겸손하게 미사를 지내서 그렇습니다. 새벽부터 밤중까지 고해소에 머물며 고해를 들어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쉽게 언급할 수는 없지만, 주님의 오상을 자신의 몸에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기도와 고통 속에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비오의 거룩함과 명성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더욱 커졌습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신자들의 영적 지도와 고해성사를 통해 하느님과 화해하고 십자가의 주님과 일치하도록 보살핀 그의 성덕을 칭송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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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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