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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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거리두기

[한민택 신부의 금쪽같은 내신앙] (72) 거리두기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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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국, 거리두기로 암울했던 때를 우리는 기억한다. 미사와 모임이 중단되어 더더욱 힘들었던 때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거리두기가 역으로 도움이 되기도 하였다. 지구가 멈추자 자연 생태계가 되살아났다. 인간이 얼마나 생태·환경을 괴롭혀 왔는지 확인하게 된 계기였다.

거리두기는 대인관계에도 많은 생각거리를 주었다. 마스크를 끼고 거리를 두며, 그동안 우리가 너무 가까이 있었음을, 서로의 삶에 너무 관여하고 내 뜻 위주로 상대를 대해왔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우린 얼마나 많은 상처를 서로에게 입히고, 그로 인해 아파서 움츠러들고 관계를 피해왔던가. 인간관계에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그 거리는 관계를 돌아보게 하고, 더 나은 관계로 나아가도록 하는 창조적 힘이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류의 타락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다. 태초에 하느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그들에게 동산의 모든 나무 열매를 허락하셨지만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다.(창세 2,17 참조) 그런데 사람은 뱀에게 미혹되어 그 열매를 따 먹고 만다. 교회가 ‘원죄’라고 이름 붙인 사건이지만, 여기에는 인간 존재와 삶에 대한 지혜와 경험도 담겨 있다. 인간 삶에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고, 손대지 말아야 할 것이 있으며, 그것을 어기고 선을 넘어 손을 댈 때 인간은 파멸에 이르고 만다는 사실이다. 이를 인간관계에 대입한다면, 상대방의 고귀한 인격과 자유에 절대로 손대지 말고 거리를 두고 존중해주고 돌보라는 메시지일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듯, 자기 삶과의 거리두기도 삶을 풍요롭게 한다. 일상의 기도·미사·피정 등의 시간은 나와의 거리를 두는, 작지만 매우 중요한 순간들이다. 우리 자신과의 거리두기는 주님과 함께 머무는 창조적인 시간이 되어 나의 묵은 감정과 상처, 괴롭고 고통스러운 순간을 딛고, 새롭게 일어설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준다.

이쯤에서 ‘하느님의 거리두기’를 떠올리면 어떨까. 육화(강생) 사건을 통해 하느님께서 무한한 거리를 뛰어넘어 우리에게 오셨다. 우리에게 오신 것만이 아닌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그러나 거리를 완전히 없애지는 않으셨다. 인간이 자유롭게 당신을 향해 길을 걸을 수 있도록, 그리하여 사랑과 우정이 싹트고 자라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해서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를 찾아왔을 때 가장 먼저 건넨 말은 ‘인사말’(루카 1,28-29)이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자유와 인격을 존중하시기에 윽박지르거나 강요하지 않으신다. 인간 스스로 응답할 수 있기를 바라시며, 인사말을 건네고 기다리신다.

예수님께서도 그러하셨다. 힘으로 밀어붙이거나 억지로 하지 않으시고,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과 벗·이웃이 되어주셨다. 그들의 삶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과 더불어 삶의 고통과 괴로움, 기쁨과 환희를 나누셨으며, 그들이 용기를 내어 일어나기를, 그리고 당신과 함께 걷기를 바라시며 손을 내밀어 주셨다. “와서 보아라.”(요한 1,39) 이 말씀은 당신께서 아버지와 나누시는 사랑의 친교로의 초대이며, 새로운 사랑으로의 초대장이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다가오시며 조용히 마음의 문을 두드리신다. 우리가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마음의 감정과 동요 속에서 벗어나 거리를 둘 수 있다면, 우리는 영혼을 어루만지며 위로하시는 성령, 예수님의 영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 영을 애타게 바라고 기다리던 우리의 영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민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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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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