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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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두기와 하나되기

[한민택 신부의 금쪽같은 내신앙] (73) 예수님의 거리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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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거리두기는 그분의 사랑법이 어떤 것인지 헤아려보게 한다.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던 때부터 많은 군중이 예수님을 찾아왔다. 심지어 너무 많은 사람이 그분에게 손을 대려고 밀려들 정도였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타실 거룻배 한 척을 마련하라고 이르셨다.(마르 3,7-10 참조) 군중과 거리를 두기 위함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이른 새벽 군중을 떠나 외딴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셨다.(마르 1,35 참조)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왕으로 삼으려 하는 군중을 피해 혼자서 산으로 물러가기도 하셨다.(요한 6,15 참조)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역에서 베드로 사도의 신앙고백에 이어 예수님께서는 장차 겪으실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셨다. 베드로가 극구 만류하자 예수님께서는 호되게 꾸짖으셨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르 8,33)

이 모두는 군중이 기대했던 구원과 당신께서 실제로 계획하신 구원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에 필요했던 거리두기였다.

그러나 그 거리두기는 궁극적으로는 우리와 하나 되기 위함이었다. 그것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이 바로 ‘가엾은 마음’이다. 가엾은 마음은 당신의 비유에 종종 등장하는 표현이지만, 실제로 예수님께 드신 마음이기도 하다. 예수님께서는 목자 없는 양들 같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셨다.(마르 6,34 참조) 병을 고쳐달라고 간절히 청하던 나병환자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를 고쳐주셨다.(마르 1,41 참조) 외아들을 잃고 장례를 치르는 과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아들을 다시 살게 해주셨다.(루카 7,13 참조)

예수님의 가엾은 마음은 남의 처지를 너무나 공감하신 나머지, 남의 고통을 당신 것처럼 느끼도록 하는 마음이었다. 예수님은 인간의 고통스러운 삶뿐 아니라 죽을 운명까지도 당신 것으로 하셨다. 수난 전날 저녁 죽음 앞에서 번민에 사로잡히실 때, 극도의 고통을 느끼신 나머지 피와 땀을 흘리셨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르 15,34)라는 외침으로 세상의 모든 버림받은 이들과 하나가 되셨으며,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 숨을 내쉬심으로써 세상의 죽어가는 모든 이와 하나가 되셨다.(요한 19,30 참조) 그 모든 것이 인간을 향한 예수님의 자비와 사랑에서 비롯되었다. 자비와 사랑에서만큼은 예수님은 모든 거리를 뛰어넘어 우리와 하나가 되셨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랑법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생각과 거리를 두기도 하셨고, 또 그 거리를 넘어 우리와 하나 되기도 하셨다. 예수님은 거리를 두심으로써 우리가 찾고, 궁리하며 당신의 뜻을 찾도록 하셨다. 때론 그분의 생각이 우리의 것과 너무나 다르기에, 너무 힘들거나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그분에게서 멀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삶에서 시련과 위기가 찾아오고, 고통스러운 순간을 겪으며, 그분께서 이미 우리 안에 와 계심을 깨닫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내가 아프고 힘들고 지치고 외로울 때, 주님께서는 나보다 더 깊은 곳에 오셔서 이미 나와 함께 아파하셨던 것이다.

살아온 삶을 돌아보며 그분께서 이미 우리 삶 굽이굽이에 함께하셨음을 깨달을 때, 우리는 마음을 활짝 열고 그분을 마주하며 우리 마음이 그분 마음처럼 변화해감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그분을 닮아가며, 그분과 사랑 안에서 일치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한민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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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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