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마지막 시기와 대림 초기에는 종말의 때에 대한 예고와 함께 깨어 기다리라는 말씀으로 전례가 장식된다. 종종 유사종교 교인들이 악용하는 종말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은 때로는 섬뜩하게 다가오지만, 실은 환난의 때를 참고 기다리면 당신께서 곧 오셔서 구해주시리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사람의 아들이 문 가까이 온 줄 알아라.”(마르 13,29)
교회는 마지막 때에 있을 재난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을 인류 종말에 있을 일로만이 아닌, 지금 우리 삶 안에 일어나는 일로도 해석해왔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종말 사건은 개개인의 죽음일 수 있고, 병으로 인한 시한부 인생의 선고일 수 있으며, 더 일반적으로는 삶에서 경험하는 여러 시련과 위기의 순간일 것이다. 우리 삶에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과 사고들, 그리고 그로 인해 우리 인생이 뿌리째 흔들리는 것을 수도 없이 경험해왔다.
위기의 특징은 삶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동안 쌓아올린 삶이라는 집이 한순간에 무너지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방향을 잃고 혼란스러워하거나, 망연자실 잿더미 속에서 슬피 울며 절망에 빠진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사람의 아들이 문 가까이 온 줄 알아라.” 그것은 약속의 말씀이며 희망의 말씀이다. 삶에서 큰 환난이 닥치더라도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 또한 삶에서 닥치는 환난의 순간은 주님께서 문 밖에 와 계시니, 그분의 오심을 당장 맞을 준비를 하라는 말씀이기도 하다. 불안에 흔들리거나 좌절하지 말고, 인내하며 힘을 내 다시 일어나 그분을 맞기 위한 기다림의 시간으로 삼으라는 말씀이다.
생각해보면 삶이 허물어지는 위기의 순간들은 우리가 언젠가는 이 모든 것을 놓고 떠나야 할 존재임을 알려주는 순간들이 아닐까. 우리가 소유하고 누리는 것들은 소중하고 가치 있지만, 그래서 살면서 그토록 많은 것을 모으고 쌓아올리지만, 결국 우리는 빈손으로 가게 될 것이기에, 위기의 순간은 주님께서 오실 때 훌훌 털어버리고 떠날 수 있기 위한 준비의 시간이 아닐까.
어떤 의미에서 우리에게는 그렇게 쌓아올린 것들이 허물어지는 순간이 필요하다. 물론 그것이 큰 충격으로 다가오기에 상처를 남기기도 하지만, 그런 순간들이 없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늘 떠나야 할 존재임을 깨닫고 내려놓고 버리는 연습을 할 수 있을까.
신학교에서 종종 이사할 경우가 생긴다. 짐이 많은 사람에게 이사는 큰 부담이 되지만, 이사를 하면서 많은 것을 정리하고 버리며, 그동안 쌓아만 놓고 살아온 삶을 반성도 하게 된다.
이를 나무에 빗대어 표현하자면 ‘벗어버림’이 아닐까, 그리고 이것이 대림을 지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단어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가을이 되면 나무는 잎을 벗어버리고 겨울 준비를 한다. 올해는 여름에 긴 더위가 기승을 부려서 그런지 나뭇잎이 떨어지는 시기가 꽤나 늦어졌다. 학교 진입로 은행나무가 11월 초면 잎이 떨어지는데, 나뭇잎 떨어지는 시기가 12월 초까지 이어졌고, 그렇게 되면 나무들은 겨울 동안 물과 양분을 공급받을 시간을 그만큼 짧게 가질 수밖에 없어 나무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한다.
우리가 경험해 온 위기와 무너짐의 순간은, 우리를 벗어버리고 주님을 향한 기다림으로 채워야 할 시간이었다. 대림은 다시금 벗어버림을 통해 주님의 가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를 채울 것을 재촉한다. 시간이 없다. 주님의 오심인 성탄이 가까이 왔기 때문이다.
한민택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