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 중 갑자기 대화가 멈출 때 프랑스어 표현으로 ‘천사가 지나간다’고 말한다. 그런데 실제로 천사가 지나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마리아와 요셉에게 천사가 ‘지나간’ 일은 매우 큰일을 의미했다. 천사의 방문으로 인생의 큰 격변기를 겪어야 했던 것이다.
복음서에 나오는 천사의 방문은 단순히 2000년 전에 일어난 일만이 아닌, 오늘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에 관한 이야기다. 주님의 천사는 지금도 우리 삶을 방문하시고 하느님의 계획을 알리시며 우리 삶을 새로운 길로 안내해주고 계신다.
모든 방문은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며 건네는 인사말로 시작한다. 주님의 천사가 방문하였을 때, 요셉과 마리아는 천사의 인사말을 알아들었고, 그에 응답하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천사의 방문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천사가 직접 눈앞에 나타나는 것도 아닌데.
한 형제님께서 신앙의 어려움을 토로하신 적이 있다. 신앙생활이 무미건조하고 무의미해서, 신앙을 계속 갖고 살아야 하나 하는 고민이셨다. 그래서 답을 드렸다. “신앙에 대한 고민으로 많이 괴로우시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이 위기가 기회는 아닐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만약 그런 위기가 없다면,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신앙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형제님이 삶과 신앙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하셨으니, 이제 진정으로 신앙의 여정에 들어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용기를 내어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고민거리가 없다면 우리 삶은 그 자리에서 맴돌면서 무미건조할 수밖에 없다. 삶에 위기가 닥칠 때, 삶에 대해 진지하게 물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믿어야 할 것인지 고민할 때, 그때가 바로 진정한 신앙의 여정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때가 바로 천사의 방문이 이루어지는 때다.
천사는 일상의 사건이나 만남, 특별히 나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물음을 던지게 하는 일들을 통해 방문한다. 우리 삶에는 그러한 사건이 종종 일어난다. 그동안 평온했던 삶에 큰 파장을 일으키는 사건과의 만남, 놀라움과 의구심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들. 성경은 바로 그때가 천사가 우리 삶을 방문하는 때이며, 하느님 계획이 드러나는 때라고 말한다.
마리아와 요셉의 삶에 큰 위기가 닥쳤다. 천사의 방문을 받고 놀라움과 의구심에 휩싸였다. 그러나 두 분은 그 안에서 하느님의 크신 계획을 발견하셨다. 비록 당장은 답이 보이지 않기에, 불안정함과 불확실함이 지속되었지만(만약 답이 명확했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주님의 계획에 자신을 맡겨드릴 수밖에 없었다.
신앙이란 결국 그러한 과정 속에서 하느님의 계획을 깨닫고 모든 것을 그분께 맡겨드리는 법을 배우는 여정이 아닐까. 이는 스스로 포기하는 ‘내려놓는 것’과는 다르다. 맡겨드린다는 것은 미래를 약속하신 분께 자기 자신을 내어드리는 것이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마태 1,24)
천사의 방문은 일상 한가운데, 특별히 나를 돌아보고 신앙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하는 사건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성경은 우리 삶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무심결에 지나치지 말라고 말한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그들과 나누는 대화들, 이 모두가 주님의 천사께서 우리 삶을 방문하시는 순간들이기 때문이다. 그 방문을 알아보고 응답할 수 있도록 주님께 지혜를 청하자.
한민택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