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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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찾아 나서자

[한민택 신부의 금쪽같은 내신앙] (92)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로마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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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을 지내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희년 분위기가 나지 않는 것은 필자만의 느낌일까. 극심하게 혼란스러운 우리나라의 현 상황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상처 입고 희망을 잃은 이 시대에 교회가 희망의 불꽃을 피워주기를 바라는 취지로 희년의 주제를 ‘희망의 순례자’로 정하셨다. 그런데 이 암울한 시대에 교회가 세상에 전해줄 수 있는 희망은 과연 어떤 것일까? 희년의 성경 문구처럼(로마 5,5 참조) 우리는 얼마나 그 희망을 부끄럽지 않게 확신을 갖고 전하고 있는가?

최근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는 책에 관한 기사를 봤다. 저자는 말기암으로 극심한 고통 중에 안락사(조력사)를 선택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며,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병이 나을 가망이 없는 상태에서 남아 있는 시간은 죽기보다 더 힘든 고통으로 다가올 것이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예정된 죽음’을 하루 앞둔 내일을 기다리는 환자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괴로웠기에 오늘이 빨리 내일이면 좋겠다고 말했을까.

필자는 췌장암으로 고통받다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신 모친을 곁에서 지킨 경험이 있기에, 위의 이야기에 무척 공감이 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꼭 그래야만 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남기도 했다. 그것은 다만 교회가 안락사를 금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이는 말기암 환자만이 아닌 모든 인간이 겪을 문제인 것이다.

어느 순간 우리는 노환이든 질병 때문이든, 인간적인 희망이 모두 땅에 떨어지는 ‘희망의 낭떠러지’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아무 희망도 없을 때, 과연 죽기까지 남아 있는 시간이 무슨 의미와 가치가 있을까? 우울감에 빠지고 괴로운 나날을 보낼 것이며, 나를 여전히 살려두시는 하느님을 원망도 할 것이다. 이처럼 우리 모두는 희망 없인 단 한순간도 살 수 없는 연약한 존재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죽음을 넘어선 희망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희망이 모든 것을 바꾼다. 생사를 주관하시는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순간 우리에게 남아있는 시간은 하느님을 만날 채비를 하며 관계를 정리하고 생을 정리할 너무나 소중한 시간으로 변화한다. 필자는 호스피스에서 그것을 경험했다. 만약 이러한 희망을 세상 사람에게 전해줄 수 있었다면 조력사를 선택한 결정을 바꿀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쯤 되면 한강 작가의 말처럼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보다 먼저 이 길을 걸은 신앙인들은 우리가 지닌 희망이 무엇인지 찾으라고 한다. 그 희망이 얼마나 복되고 소중하며 위대한지를. 뒤늦게 깨닫지 말고, 그 희망을 찾아 지금부터 생을 정리하고,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며, 선물처럼 주어진 오늘 하루를 아름답고 찬란하게 살라고 한다.

예수님께서는 거룩하게 변모하신 사건을 기점으로 예루살렘으로 발걸음을 옮기셨다. 예루살렘으로 가신 이유는 우리보다 먼저 고통과 번민, 절망과 죽음의 길을 몸소 걸으심으로써 우리가 죽음의 골짜기에 다다랐을 때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에게 희망이 되시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사순 시기는 주님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며,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고자 하신 희망을 찾아 걷는 순례길임을 기억하자. 세상은 희망을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죽음을 넘어선 희망을 스스로 꿈꾸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믿는 우리가 나서서 담대하고 확신에 차 희망을 전하고 희망을 살아간다면, 세상은 더 밝아지고 희망차게 변하지 않을까.


한민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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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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