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필리 4,4)
신앙에서 기쁨이 없다면 어떨까? 얼마 전 선종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처음 내신 문헌 「복음의 기쁨」에서 말씀하신다. “복음의 기쁨은 예수님을 만나는 모든 이의 마음과 삶을 가득 채워줍니다.”(1항) 그리스도인의 본질은 기쁨이다. 기쁨 없이 복음을 선포할 수 없다. 기쁨 없이는 신앙을 살 이유도 의미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신앙에서 얼마나 큰 기쁨을 느끼는가?
성경은 구원을 발견한 이들의 기쁨으로 가득하다. 동방 박사들이 별을 다시 발견했을 때 더없이 기뻐하였다.(마태 2,10 참조) 예수님의 탄생에 큰 기쁨을 맛본 이들은 길 위의 목자들이었고, 나이가 많았던 시메온과 한나였다.(루카 2,15-20; 25-39 참조) 예수님께서는 참된 행복 선언을 통해 하느님 자녀로 사는 기쁨으로 모든 이를 초대하셨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마태 5,12)
예수님의 비유 속에도 기뻐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그 기쁨은 삶에서 가장 소중한 하느님 나라를 발견했을 때 찾아오는 기쁨이며(마태 13,44 참조), 회개하는 죄인을 반갑게 맞이하는 하느님의 기쁨이기도 하다.(루카 15,1-10 참조)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서 작은아들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기뻐하며 큰 잔치를 베풀어주었다.(루카 15,11-32 참조) 그 기쁨은 작은아들이 저지른 배은망덕이 더는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큰 것이었다. 물론 그 기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큰아들의 모습도 등장한다.
그런데 가장 큰 기쁨은 돌아가셨던 주님께서 되살아나셨을 때 제자들이 느꼈던 기쁨이 아니었을까.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요한 20,20) 주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그들과 함께 계신다는 것, 그분 앞에서는 이제 죽음도 힘을 잃고 말며, 주님께서 친히 그들의 희망이 되어주신다는 것이야말로 제자들에게 가장 큰 기쁨이었으며, 목숨을 아끼지 않고 세상 만방에 주님의 복음을 전하게 된 원동력이었다.
그런데 그 기쁨은 수난과 죽음이 배어있는 기쁨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너희는 울며 애통해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요한 16,20) 예수님은 제자들이 당신을 다시 보며 기뻐할 것이고, 그때에는 그 기쁨을 아무도 빼앗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다. 이 기쁨은 수난과 죽음을 관통한 다음에, 곧 수난을 통해 자신을 죽인 다음에 주어지는 기쁨이다.
신자들과 부활 체험을 나눌 때마다 확인하는 것은 우리가 자신을 죽이지 않는다면, 우리가 낮아지고 겸손해지지 않는다면 진정한 부활의 기쁨을 맛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삶에서 닥치는 고통과 시련은 근심과 괴로움으로 다가오지만, 신앙 안에서 견디어낼 때 우리는 더 높이 솟아오르는 희망을 발견하며, 고통과 시련이 나를 죽이기 위해 필요했음을 깨닫게 된다. 또한 진정한 기쁨은 나의 의지나 뜻에 따라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주님의 뜻에 나의 삶을 맡겨드릴 때 주어진다는 것을 배운다.
주님의 일을 하는 것에서 오는 기쁨도 있다. 주님의 일에도 어려움과 고통의 순간이 따른다. 그렇지만 주님께 의탁하며 끝까지 감내할 때, 내 손으로 일하지만 선물처럼 주어지는 열매가 맺히는 경험이 있다. 모든 것이 주님께서 주시는 선물임을 인정하게 되고 나를 지우는 것에서 오는 기쁨이 있다.
자신에게 물어보자. 우리는 오늘 어떤 기쁨을 좇아 살고 있는가?
한민택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