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성월을 지내며 희망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에 대해 묵상해 본다. 위기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신앙 안에서 예수님과 끝까지 함께 하시며 하늘에까지 오르심으로써 우리에게 희망의 별이 되신 성모님은 위로의 어머니로서 오늘 우리에게 희망의 어머니가 되어주신다.
희년을 맞아 희망을 찾아 떠나는 순례의 출발점은 인간의 약함과 그로 인해 상처받은 인간의 고통스러운 현실이다. 우리가 그토록 많은 상처를 받고 살아온 것은 우리가 상처 입기 쉬운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연약한 존재로 세상에 태어났으며, 부모님을 비롯한 수많은 분의 돌봄과 보살핌으로 이렇게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희망은 바로 그 지점에서 찾아온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연약함과 상처 입은 영혼을 깊이 아시고 위로해주시며 몸소 우리의 희망이 되어주시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위로와 희망이 되실 수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우리 인간의 약함을 비롯하여 인간이 겪는 모든 종류의 고통과 슬픔, 심지어 죽음 앞의 번민과 죽음까지도 당신 것으로 하셨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희망의 어머니로서 성모님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성모님에 대한 호칭 중에 우리를 보호하고 위로하시며 희망이 되어주시는 성모님의 역할을 강조하는 호칭은 다음과 같다. “자비의 어머니, 희망의 어머니, 든든한 힘이신 동정녀, 인자하신 동정녀, 지극한 사랑의 그릇, 병자의 치유, 죄인의 피난처, 근심하는 이의 위안.” 성모님께서 우리의 아픔을 공감하시고 위로를 전해주실 수 있는 이유는 그분 역시 인간 삶의 비참을 몸소 경험하셨기 때문이며, 신앙을 통해 그 모든 환난을 이겨내고 천상으로 오르셨기 때문이다.
성모님께서 가브리엘 천사의 방문을 받은 다음 엘리사벳을 찾아가 인사하며 부른 ‘마리아의 노래’에는 비천함을 굽어보신 하느님께 대한 강한 신앙이 자리한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루카 1,46-48)
성모님 역시 인간이 겪는 모든 고통을 몸소 겪으셨기에 상처 입고 고통받고 사는 우리에게 위로와 희망이 되어주실 수 있는 것이다. 성모님은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고통을 겪을 것이란 시메온의 예언대로(루카 2,35 참조) 아들 예수님의 죽음까지도 직접 목격하셨지만, 그 고통과 슬픔 가운데서도 아드님과 함께하시며 위로를 전해주실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세상의 죄악과 하느님 자비의 극적인 만남을 당신 몸으로 이루셨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당신 십자가 아래서 어머니와 벗이 있는 것을 보시고 위로받으실 수 있었습니다.”(프란치스코 교황, 「복음의 기쁨」 285항)
또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을 기르신 그 모성으로 오늘 우리의 마음을 돌보고 위로해주신다. 성모님은 예수님을 태속에서부터 기르셨고, 태어나신 다음에 요셉 성인과 함께 예수님을 돌보고 양육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쓰셨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인간이 되어 오실 때 인간의 모든 조건, 특히 약하고 상처 입기 쉬운 본성까지 취하고 오셨기에, 성모님께서는 인간의 약함을 알고 돌볼 줄 아셨으며, 그렇기에 그 마음으로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주실 수 있는 분이시다.
성모님의 달을 지내며, 상처 입고 괴로운 우리 연약한 마음을 잘 아시고 위로해주시는 성모님께 마음을 열고 성모님의 따스한 모성 안에 머물며 위안과 힘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위로를 주위 사람들에게 전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한민택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