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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걷고 기도하고] 원주교구 용소막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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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용소막성당은 두 가지로 유명하다. 고풍스러운 성당 건물과 사제관 그리고 한국교회 성경 번역 역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고(故) 선종완 신부(라우렌시오, 1915~1976) 생가터와 ‘선종완 라우렌시오 사제 유물관’이 그것이다. 성당은 한국교회의 소중한 자산인 동시에 신자와 비신자 모두에게 안식을 주는 관광자원이기도 하다.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86년 5월 23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6호로 지정됐을 뿐만 아니라 원주시가 ‘원주 8경’ 중 제7경으로도 선정해 전국적인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10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용소막성당을 찾았다.



신자들이 원해, 신자들 손으로 지은 성당


용소막본당(주임 윤종민 안토니오 신부)은 강원도에서는 풍수원본당(1888년), 원주본당(1896년, 현 주교좌원동본당)에 이어 1904년 5월 4일 세 번째로 설정된 본당이다. 설정 당시 신자 수는 864명, 관할 구역은 원주·평창·영월·제천·단양 등 5개 군에 공소는 17개로, 명실공히 강원도 지역 복음화의 산실이라고 볼 수 있다.


본당이 자리한 ‘신림면(神林面)’이라는 지명부터가 범상하지 않다. ‘신성스런 수림’이라는 뜻이어서 본당이 현 위치에 터를 잡게 된 교회사적 유래를 짐작하게 한다. 실제로 본당 주변에는 천주교 박해를 피해 온 신자들이 교우촌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해관(베드로·66) 용소막성당 성지 해설사는 “우리 집안도 누대에 걸쳐 본당 신자로 살아왔고, 신자 중 4대나 5대째 용소막본당에서 신앙을 이어가는 분들이 대부분”이라며 “평지보다 높은 곳에 지어진 용소막성당에서 내려다보이는 마을 주민 중 지금도 천주교 신자 비율이 꽤 높다”고 밝혔다.


순례자들은 성당이 지닌 외형적 아름다움에 매료된다. 보호수로 지정된 아름드리 느티나무에 둘러싸여 완만한 언덕 위에 서 있는 성당은 붉은색과 회색 벽돌이 조화를 이룬 외벽에 날씬하게 높은 종탑, 동판으로 덮인 지붕이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시킨다.



지금의 성당 건물은 1915년 가을 약 330㎡(100평) 규모로 완공됐다. 건축 연도 기준으로 1892년 중림동약현성당, 1898년 주교좌명동대성당 등에 이어 한반도 전체에서 8번째로 지어졌다. 전통적인 고딕양식을 하고 있지만 규모가 작아 아담하고 정겹다.


세월이 흐르며 일제강점기에는 종을 공출당했고, 한국전쟁 중에는 성당이 군수창고와 마구간으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마루 교체 등 일부 보수 공사를 한 것 외에는 111년 전 처음 지어졌을 때의 원형을 충실히 보존하고 있다. “예수 기력이 핍진하사 제이차 업더지심이라”는 십자가의 길 제7처 문구가 성당의 오랜 역사를 대변한다.


그러나 이해관 성지 해설사는 “겉으로 보이는 성당의 아름다움보다 성당 건축에 담긴 신자들의 희생과 헌신을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신앙 선조들이 고생한 덕으로 오늘의 신자들은 편안하게 신앙생활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성당은 신자들이 먼저 나서 건축에 힘쓴 결실이었다. 외벽에 사용된 벽돌은 신자들이 마을 가마터에서 구워 손수 날랐고, 성당 내부를 받치고 있는 소나무 기둥들도 장마철에 하천이 불어난 시기를 이용해 운반했다. 구석구석 신자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함께 지어진 사제관도 순례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특이하게도 성당보다 5~6m 높은 곳에서 신비한 듯한 인상을 풍긴다. 성당 부지 지형과 지질을 활용하다 보니 지금 자리에 지었다는 설, 그리고 사제가 신자들이 사는 마을을 내려다보면서 신자들과 교감하려는 생각에서 일부러 높은 자리를 택해 지었다는 설이 공존한다. 성당 마당에서 사제관으로 오르는 기다란 계단 또한 독특한 모습이다.



성경 번역의 역사, 선종완 신부


성당 앞 텅 빈 듯한 잔디밭은 순례자들이 무심코 지나치기 쉽다. 하지만 잔디밭에 세워진 바윗돌을 눈여겨보면 ‘선종완 노렌조 신부 생가터’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노렌조는 라우렌시오를 과거에 부르던 세례명이다. 바윗돌 옆 ‘생가터 소개’라고 적힌 안내비에는 “이곳은 선종완 라우렌시오 신부가 태어난 곳이다”로 시작하는 선 신부의 간략한 일대기가 소개돼 있다. 선 신부가 태어난 1915년 8월 8일은 성당 건축이 마무리되던 시점이었다. 선 신부와 성당은 동갑인 셈이다.


성당을 순례하다 보면, 선 신부가 설립한 말씀의 성모 영보 수녀회가 본당과 협력해 1988년 11월 개관한 ‘선종완 라우렌시오 사제 유물관’을 볼 수 있다. 유물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선 신부가 일생토록 성경 번역에 몸과 마음을 다 쏟았던 열정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선 신부는 현행 성경 이전에 사용되던 공동번역성서 번역의 주역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 공동번역성서 번역에 참여하기 전에 단독으로 사비를 들여 성경 번역과 출판에 정열을 바친 선구자였다.


유물관에는 선 신부가 1952년 예루살렘에서 공부할 때, 지역 박물관을 매일 방문해 카메라가 없어 손으로 유물 내용을 필기한 공책, 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일하며 시간을 아끼려 타고 다녔던 오토바이 부품, 단독으로 번역한 성경 원고 등 귀한 유물들이 가득하다. 가장 눈에 띄는 유물은 선 신부가 직접 고안한 ‘6각 책상’이다. 성경 번역을 하며 여러 도서를 동시에 확인하기 위해 책상을 6각형으로 층을 나눠 만들었다.




유물관 담당 이상숙(마리 대건) 수녀는 “선 신부님은 성경 말씀이 곧 하느님의 사랑이라고 믿으셨기 때문에 아직 성경 번역이 되지 않던 시절, 신자들에게 성경 말씀을 전해 주려는 일념으로 잠을 줄여 가며 사셨다”고 말했다. 말씀의 성모 영보 수녀회는 올해 선 신부 선종 50주년을 맞아 그의 업적을 조명하는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하는 등 선 신부 시복 추진에 역량을 모을 계획이다.



◆ 순례 길잡이 주소: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신림면 구학산로 1857(용암리 719-2)

미사: 주일 오전 11시(토요일 오후 7시), 월요일 오전 7시, 화·목요일 오후 7시, 수·금요일 오전 10시

문의: 033-763-2343 본당 사무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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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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