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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걷고 기도하고] 대구대교구 진목정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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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자유를 얻기 전까지, 조선교회는 언제나 박해의 위험에 직면해 있었다. 당시 신자들은 첩첩산중 이곳저곳으로 피해 다니며 교우촌을 세우고, 추위와 굶주림과 고통을 참아가면서도 믿음을 지켜갔다. 그들은 성사 생활에 철저하려 노력했고, 이웃을 존중하고 사랑하면서 믿음과 삶을 일치시키고자 했다.
경북 경주 단석산 중턱 해발 350m에 조성된 대구대교구 진목정 성지는 무진박해(1868년) 때 순교한 복자 이양등(베드로)·김종륜(루카)·허인백(야고보)이 살던 ‘범굴(바위굴)’과 순교 후 유해를 모셨던 ‘순교자 묘소(현재 가묘(假墓))’가 있던 곳이다. 단 한 순간이라도 하느님 자녀다운 삶을 살고자 했던 세 복자의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에 조성된 순교 사적지다.


당당하게 죽음으로 신앙 증거하다

1911년경 대구대목구 신자 김봉삼(가밀로)이 복자 허인백의 딸 허 골룸바로부터 전해 듣고 작성한 친필 자술서에 따르면, 복자 이양등·김종륜·허인백과 가족은 병인박해(1866년) 이후 울산 죽영산 교우촌에서 만난 뒤 좀 더 안전한 신앙생활을 위해 당시 경주군 산내면 소태동 단석골 범굴로 피신해 신앙생활을 했다.

1868년 무진년 어느 날, 세 복자는 경주 포졸들에게 발각돼 끌려갔다. 이때 허인백은 가족들에게 “나는 오늘 가면 영원 이별이다. 나를 위하여 기도하라”라고 한 뒤 “너희는 성교를 믿고 후세에 천국에서 만나자”며 남은 가족에게 신앙을 최우선으로 삼으라는 유훈을 남긴다.

복자들은 두 달여간 경주 진영에서 고초를 겪으면서도 배교하지 않고 천주교 신자임을 당당하게 밝혔다. 형벌에 으스러진 만신창이 몸으로 울산 병영까지 80리 길을 끌려가면서도, 자신들이 내딛는 걸음들을 천국으로 향하는 꽃길처럼 여기며 순교를 결심했다고 한다.

그해 음력 7월 28일경, 순교의 칼을 받기 직전에도 복자들은 망나니에게 “나중에 부활할 육신이기에 머리를 날쌔게 베고 또 머리를 분별해 달라”고 하면서 십자성호를 긋고 “예수, 마리아”를 외치며 순교했다.

세 복자의 뒷바라지를 위해 경주 진영과 울산 병영까지 따라가 복자들의 순교 순간을 지켜봤던 허인백의 부인 박조이는 복자들의 머리를 거두어 울산 병영 앞 강변에 숨겨놓았다. 박해가 끝난 뒤 박조이는 지금의 진목정 성지 일대에 형성됐던 참나무뎡이(眞木亭·‘참나무가 많은 골짜기’를 의미) 교우촌 신자들의 도움을 받아 유해를 참나무뎡이 위 단석산 중턱에 합장해 모셨다. 이곳이 현재 진목정 성지 ‘순교자 기념성당’ 앞에 있는 순교자 묘소다.

세 복자의 유해는 1932년 대구 감천리 교회 묘지로 이장했다가 1973년 대구대교구 복자성당으로 옮겨 모셨다.


신앙 돌아보고 편히 쉬어갈 수 있는 곳

진목정 성지를 순례하기에 앞서 ‘허륜이 기념정원’(경북 경주시 산내면 소태길 22-58)에 먼저 들렀다. 이곳은 복자들이 살았던 범굴 입구에 조성된 기념 장소로, 지금은 출입이 통제된 범굴을 대신해 만들어졌다. 범굴의 모습은 성지 내 순례자의 집 1층에 조성된 모형으로 알 수 있다.

허륜이 기념정원에서 소태길을 지나 ‘진목공소’를 향해 2.6km를 걸어 올라갔다. 참나무뎡이 교우촌의 공소였던 진목공소는 경신박해(1860년) 이후 성 다블뤼(안토니오) 주교가 이곳 교우촌을 사목 방문한 뒤 설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다블뤼 주교 이전에는 가경자 최양업(토마스) 신부가 사목 방문했던 기록이 있다.

진목공소에서 800m 남짓 더 올라가면 진목정 성지를 대표하는 순교자 묘소와 ‘순교자 기념성당’, ‘순례자의 집’을 만날 수 있다.


순교자 기념성당은 ‘하느님 뜻에 따라 삶을 봉헌한 신자들은 마침내 천국 영광을 누리게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앞면을 성당, 뒷면을 하늘원(봉안당)으로 지었다. 성당은 신앙인의 죽음을 되새기면서, 이곳에 봉안된 모든 영혼이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행복에 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건축됐다. 특히 하늘원은 전시 공간으로 활용될 정도로 깨끗하고 아늑한 환경 속에 안치 공간과 휴게공간이 공존한다. 성당 외부는 신앙인들이 추구해야 할 여덟 가지 행복(진복팔단, 眞福八端)을 되새긴다는 의미에서 팔각형으로 디자인했다.

순례자의 집은 피정과 순례, 여행 등을 위해 준비된 숙박 시설이지만, 무엇보다 순례자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곳’으로 조성됐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숙소 ‘알베르게(Albergue)’를 연상시키는 다인실부터 1인실과 가족실 등이 있으며, 캠핑을 위한 카라반 시설도 갖추고 있다. 순교자 기념성당과 가까이 위치해, 미사를 드린 뒤 혼자만의 묵상과 순례를 하기에 적합하다.

순례자의 집 1층의 범굴 모형 기도소는 진목정 성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세 복자들이 가족들과 피신해서 머물렀던 범굴을 본떠 만든 이곳은 좁은 입구로 들어가 암흑 속에서 침묵 가운데 묵상과 기도를 하며 머물 수 있는 공간이다.


성지 주임 이종건(시메온) 신부는 “진목정 성지는 세 분 복자의 순교 정신을 기리고, 우리도 그분들처럼 살아보고자 다짐하는 장소”라며 “그분들의 삶을 본받고자 묵상하고 자연 속에서 쉴 수 있는 천혜의 장소”라고 말했다. “쉬러 오셔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 이 신부는 “울산 병영 순교 성지나 죽림굴 등 인근의 다른 성지를 방문할 때도 세속적인 숙소보다는 마음을 정리하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이 필요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성지 순례 때 진목공소 뒤편으로 연결된 성경식물원 ‘바이블가든’도 꼭 찾아야 한다. 한국과 재배 환경이 달라 평소 접하기 힘들었던 성경 속 다양한 식물들을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대구가톨릭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를 지낸 안계복(베르나르도) 씨와 「성경의 식물 명칭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영숙(클라라) 씨 부부가 조성한 식물원이다. 특히 이스라엘에서 직접 들여와 기른 올리브나무를 볼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순례자들이 꼭 들러볼 만한 장소다.


◆ 순례 길잡이 - 주소: 경북 경주시 산내면 수의길 192(순교자 기념성당)

- 미사: 주일, 목(3~11월)·금·토 오전 11시

-문의: 054-751-6488

우세민 기자 semin@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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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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