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푸친 수도원에 가면 으레 걸려 있는 교황님 사진이나 성인들의 성화 이외에 또 하나의 정체 모를 여인의 초상화가 눈에 들어온다. 성녀도 아니고 수도자도 아니었던 여인, 그러나 형제들이 대대로 기억하는 이 여인의 이름은 ‘카타리나 치보’다. 당시 흑사병 환자들과 전쟁 부상자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던 카푸친 형제들에게 깊이 감복하여 카푸친과 인연을 맺은 첫 번째 후원자였다. 카타리나 부인은 특히 개혁 과정에서 곤경에 처한 형제들이 독립된 수도회로 인준받는 데 큰 역할을 했는데, 그녀가 유럽 최고의 명문가 메디치 가문의 딸이자 클레멘스 7세 교황의 가장 사랑받는 조카였기 때문이다.
세상의 눈으로는 이른바 ‘빽’의 중요성을 실감케 하는 일화지만, 이 역시 카푸친들을 이끄신 하느님의 놀라운 섭리였던 동시에, 무엇보다 고통받는 이웃과 연대한 형제들의 열정적인 봉사가 당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울림을 주었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렇게 첫 카푸친 형제들이 추구했던 성 프란치스코의 초기 이상은 가장 먼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 한가운데서 발현되었다.
기도의 사람이자 열정 넘친 사도 성 프란치스코, 그는 거룩함이 곧 세상과의 분리라고 여겨 수도원 담장을 높게 쌓았던 당대의 사고를 넘어 담장 밖 이 세상 전체가 창조주 하느님의 선하심을 반영하는 거대한 수도원이라고 보았다. 이런 그의 생각 덕분에 프란치스칸들은 세상 어디에서나 하느님 현존 안에 머물며 한 담장 아래 있는 모든 피조물에게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첫 카푸친 총회에서 작성된 최초의 회헌은 첫 프란치스칸들의 삶을 재현하려는 선한 열의를 담고 있으면서도 엄격한 가난과 기도, 은둔과 침묵이라는 키워드 안에 형제들을 세상과 멀리 떨어진 은수자로 보이게 했다. 총회를 주도한 몇몇 형제들의 개인적 성향에서 비롯된 새 형제회의 이러한 치우친 노선은 그 균형을 맞추려는 대다수 형제와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그리하여 공동체 안에 활동하시는 성령의 인도로 열린 두 번째 총회에서 개정된 새 회헌은 ‘세상으로부터 물러남’이 아니라, 바로 그 ‘세상 안으로 뛰어드는’ 프란치스칸들의 사도적 소명을 재확인하였다.
‘개혁’이라는 타이틀을 진 카푸친들이 추구한 ‘더욱’이란 의미에는 더욱 세상과 이웃들에게 가져야 할 관심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카푸친의 카리스마는 회헌만이 아니라, 형제회가 시작되던 혼란스러운 시기에 탄생한 카푸친의 첫 성인 ‘칸탈리체의 펠릭스’라는 무식하고 단순한 한 명의 수도자에 의해 형성되었다. 일평생 거리에서 구걸하는 소임을 수행한 그는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이에게 격의 없는 친구가 돼주었고, 진심 어린 위로와 공감을 나누며 사람들과 ‘동고동락’하는 삶을 살았다. 나아가 이런 펠릭스의 모범은 그의 후배들인 15명의 카푸친 성인과 120여 명에 가까운 복자들에게 전수되어 카푸친만의 독특한 색깔을 입혀나갔다.
눈부시게 발전하는 AI와 과학기술이 뭐든 다 해결해주리라 믿는 이 시대. 그런데 한편으로 사람의 따뜻한 체온이 그립고 마음 깊이 두 다리를 쭉 펴게 해 주는 편안한 친구가 점점 더 귀해지는 건 왜일까? 가진 게 기도밖에 없지만 그 기도가 진심이 되어주는 사람, 고통을 해결해주지는 못하지만 그 고통에 함께 머물러 있어주는 사람, 그렇게 덜 세상적이면서 더 세상 안에 뛰어드는 카푸친 형제들의 소명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요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