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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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걷고 기도하고] 전주교구 여산순교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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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익산시 여산면은 인구 3000명이 채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다. 그러나 곳곳에는 1868년 무진박해 당시 신자들이 겪은 박해와 순교의 흔적이 남아 있다. 당시 인근 지역 곳곳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가던 신자들은 여산으로 끌려와 가혹한 형벌을 받고 목숨을 잃었다. 현재까지 확인된 순교자만 김명언(안드레아), 김흥칠(마티아), 오윤집(타대오) 등 23명, 무명 순교자도 적지 않다. 이들의 순교터를 따라 조성된 전주교구 여산순교성지 ‘진복팔단길’은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며 하늘나라의 참행복을 소망한 순교자들의 영성을 묵상하는 길이다. 여산성당에서 출발해 감옥터와 백지사터, 숲정이성지 등 일곱 순교터를 잇는 길에서 순교자들이 고통 속에서도 놓지 않았던 참행복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참행복’ 증언한 형장 ‘숲정이’

여산성당에서 북서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여산천 변에 자리한 전라북도 기념물 제125호 ‘여산숲정이성지’에 닿는다. 성지 입구 중앙에는 피에타상이 세워져 있고, 제대 뒤편 돌벽에는 십자가의 길 14처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제대 왼쪽에는 십자 순교 기념비, 오른쪽에는 예수성심상이 자리한다.

‘숲정이’는 ‘마을 가까이에 있는 숲’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지금은 옛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조선시대 이곳은 신자들을 처형하던 형장이었다. 당시 여산은 도호부 관아와 군영이 자리한 행정·군사 중심지로, 고산과 금산, 진산, 용담 등 인근 지역에서 붙잡힌 신자들이 모두 이곳으로 끌려왔다. 숲정이에서는 참수형이 집행되거나, 다른 곳에서 처형된 신자들의 시신이 버려지기도 했다.

고산 넓은 바위골에서 신앙 공동체를 이루며 살던 김성첨(토마스)을 비롯한 신자 17명도 무진박해 때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김성첨의 집안에서는 3대에 걸쳐 모두 6명이 순교했다.

김성첨은 감옥에서 고통받는 신자들에게 “천당진복을 누리려는 사람이 이만한 고통을 참아 받지 못하겠습니까? 감심(感心)으로 참아 받읍시다”라고 말하며 용기를 북돋웠다고 전해진다.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서로를 격려하며 신앙을 지킨 이들의 모습은 숲정이가 단순한 처형터가 아니라, 하늘나라의 참행복을 함께 증언한 자리였음을 보여 준다.

참혹했던 순교의 자리…백지사터와 옛 관아

성당 바로 옆 좁은 골목을 따라 걸으면 ‘백지사터’에 닿는다. 백지사(白紙死)는 얼굴에 물을 뿌린 뒤 한지를 여러 겹 붙여 질식시키는 형벌로, ‘도모지사(塗貌紙死)’라고도 불렸다. 이곳에는 십자가상과 십자가의 길 14처, 당시 신자가 백지사로 순교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조각이 자리하고 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감내해야 했던 순교자들의 고통이 무겁게 다가온다.

인근에는 조선시대 여산도호부사가 업무를 보던 여산동헌이 있다. 동헌 마당에는 흥선대원군 집권기에 세워진 척화비가 남아 있어 당시 천주교 박해의 역사를 간접적으로 보여 준다.

백지사터 아래는 도호부사가 풍류를 즐기고 병사들이 활쏘기를 연습했다는 ‘기금터’다. 남자 신자들에게 활을 쏘고, 여자 신자들은 연못에 밀어 넣어 죽였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평범한 마을 길을 따라 순교터를 하나씩 마주하다 보면 여산의 박해가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마을 곳곳에 흔적으로 남아 있는 역사임을 실감하게 된다.

여산 장터와 배다리, 뒷말에도 순교의 흔적이 남아 있다. 장터에서는 참수한 신자의 머리를 나무에 매달았고, 배다리에서는 신자들의 손발을 묶고 물에 빠트려 수장시켰다. 여산천 건너편 군인아파트 일대는 뒷말 순교터로 알려져 있다. 박해 당시 이곳까지 장터가 이어져 있었으며, 나뭇가지에 신자들의 목을 걸어 숨지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순교터 굽어보는 ‘하늘의 문 성당’

여산성당은 여산면 일대 일곱 순교터를 굽어보는 언덕 위에 자리한다. 순교자들이 하늘나라로 향한 길을 상징한다는 뜻에서 ‘하늘의 문 성당’이라고 불린다.

성당으로 오르는 계단 옆 잔디밭에는 정미연(아기 예수의 데레사) 작가가 청동으로 제작한 십자가의 길 14처가 조성돼 있다. 여산 순교자들이 겪은 갖가지 형벌과 순교의 고통을 표현한 작품이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본당 주보인 ‘순교자의 모후’ 성모상이 순례자를 맞는다. 두 손이 묶인 듯한 모습은 고통받는 순교자들과 함께하는 성모 마리아를 표현한다. 순교자들의 길에 끝까지 동행하며 위로를 건네는 성모님의 사랑을 떠올려 본다.

순교로 증언한 믿음 ‘성소의 못자리’로 이어져

여산 순교자들은 옥중에서도 함께 기도하고 서로를 격려하며 모진 고문과 굶주림을 견뎠다. 김성첨의 권면에 힘을 얻은 신자들은 아침기도와 저녁기도를 소리 높여 바쳤고, 그 기도 소리가 감옥 밖까지 들렸다고 한다.

이들이 순교로 증언한 믿음은 박해가 끝난 뒤에도 이 일대 신앙공동체의 삶 속에 뿌리내렸다. 성지에서 차로 10여 분 거리에 있는 성치골 교우촌과 공소는 박해가 한창이던 19세기 중반부터 신자들이 모여 살며 신앙을 지켜 온 마을이다. 

전주교구 제3대 교구장 고(故) 김현배(바르톨로메오) 주교와 제7대 교구장 이병호(빈첸시오) 주교, 제8대 교구장 김선태(요한 사도) 주교를 비롯해 많은 사제와 수도자를 배출해 ‘성소의 못자리’로 불린다.

여산본당 주임 이정현(루카) 신부는 “많은 순례자가 여산을 찾아 순교자들의 신앙을 되새기길 바란다”며 “순교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보존할 수 있도록 관심과 기도, 후원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순교자들이 서로를 붙들며 지켜 낸 믿음은 성치골 교우촌을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여산의 순교터를 걷는 길은 그 믿음이 남긴 흔적과 열매를 되새기는 순례다.



◆ 순례 길잡이(여산성당)

- 주소: 전북 익산시 여산면 영전길 14

- 미사: 주일 오전 10시30분

            월·수~토 오전 11시

            화 오후 7시30분

- 문의: 063-838-8761 성당 사무실

변경미 기자 bgm@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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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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