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 차림으로 13세기를 뒤집어놓았던 성 프란치스코. 그는 800년 뒤 흰 수단을 입은 교황의 이름이 되어 각종 언론의 앞면을 장식했다. 유례없는 교황명을 택한 프란치스코 교황. 그는 그 이름답게 소박한 생활,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을 향한 특별한 관심, 교회의 틀을 허무는 여러 개혁 조치 등 재임 기간 내내 파격적 행보를 이어갔다. 이러한 교황의 모습이 교회 내에서 종종 비판받을 때면 원인은 언제나 그의 지나친 ‘자비’에 관한 것이었다.
선출된 지 불과 2년 만인 2016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비의 특별 희년’을 선포하면서 교회가 세상에 하느님의 자비를 생생하게 보여주어야 하며, 특히 그 구체적 현장인 고해성사를 집전하는 사제들이 자비의 으뜸가는 표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교황은 고해 사제의 모범인 카푸친의 두 성인, ‘성 비오’와 ‘성 레오폴도’의 유해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 모셔 오는 특별한 행사를 열었다.
‘파드레 비오’로 유명한 비오 성인은 오상과 같은 초자연적인 현상과 매우 엄격한 신심 때문에 친근한 인상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나, 실제로는 수많은 이들과 일일이 편지를 주고받을 만큼 세심하고 따뜻한 영적 지도자였다. 무엇보다 그를 시성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고해성사에서 그가 보여준 거룩한 자비를 성덕의 중요한 결실로 꼽았다.
한편 비오 성인과 동시대의 인물 성 레오폴도는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자비에 대한 깊은 영감을 준 성인으로 자주 언급된다. 그는 고해성사에서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비판을 받자 이렇게 대답했다. “제게 나쁜 모범을 보인 분은 바로 주님이십니다. 저는 인류의 죄 때문에 돌아가신 그분의 어리석은 단계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비의 해에 특별히 카푸친 형제들과 미사를 봉헌하면서 카푸친 수도회가 지닌 ‘용서하는 전통’이 변함없이 이어지기를 당부했다. 교황은 훌륭한 고해 사제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는 이들로, 그것이 카푸친에 좋은 고해 사제가 많은 이유라고 덧붙였다. 평생을 영적 메마름 속에 살았던 성 비오, 다혈질이었던 성 레오폴도가 다른 이들을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건 그들 자신도 그런 어려움을 겪는다는 걸 잊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자비는 여유 있는 사람이 불쌍한 사람에게 베푸는 호의 그 이상의 마음이다. 되레 그들처럼 아파본 사람만이, 함께 아픔을 각오할 사람만이 재판관이 아닌 자비로운 아버지의 얼굴로 다가갈 수 있다. 예수님은 멀찍이 서서 리모컨을 눌러 인간을 구원하신 게 아니라, 모든 인간의 고통을 그대로 짊어진 그 십자가상에서 구원하시어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를 드러내셨다. 더 사랑하는 쪽이 사실은 더 아쉽고 불리하다. 그래서 인간이 하느님께 매달려 비는 것 같지만, 오히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비신다. 그렇게 아버지의 마음은 집 나간 아들을 기다리며 낮아지고 낮아진다.
프란치스코는 자기가 세운 수도회를 ‘작은형제회’라고 불렀다. 작아져야 형제가 되고, 형제가 되어야 사랑할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 반대로 말하면, 사랑해야 형제가 되고 작아지는 것, 사랑 없이 이름뿐인 작음과 형제는 위선이 되고 만다. 많은 말보다 침묵 속에 손을 잡는 그 마음이 더없는 위로가 될 때가 있다. 누군가의 따뜻한 눈빛과 미소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기도 하는 것처럼 프란치스칸 영성은 만남과 만남으로 전달되는 하느님의 사랑에서 시작되고 그 사랑으로 여정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