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머금은 땅에서도 강인하게 뿌리내리는 버드나무. 남한강변에 줄지어 선 버드나무는 거센 바람에 가지가 흔들려도 뿌리만큼은 좀처럼 뽑히지 않는다. ‘버드나무 뿌리’를 뜻하는 양근(楊根)에 자리한 수원교구 양근성지에는 시대의 격랑 속에서도 꿋꿋이 신앙을 지켜낸 신앙 선조들의 얼이 곳곳에 남아 있다.

신앙과 함께한 삶과 죽음이 겹쳐 있는 양근
성지는 천진암 강학을 주도한 권철신(암브로시오)과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 형제가 태어난 곳이자 복자 조숙(베드로)·권천례(데레사) 동정부부가 태어나 신앙을 증거한 곳이다.
초기 신앙 선조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만큼 양근 일대에는 순교의 흔적도 곳곳에 남아 있다. 기록에 따르면 순교자들은 양근천과 남한강이 만나는 오밋다리 옆 백사장에서 치명했다고 한다. 현재 오밋다리는 사라졌고, 성지에서 1.7㎞가량 떨어진 양근대교 인근을 순교터로 추정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2014년 시복된 조숙과 권천례 동정부부를 비롯해 윤유오(야고보), 윤점혜(아가타), 권상문(세바스티아노) 등 여러 신앙 선조가 순교했다. 이들의 순교를 기리기 위해 성지는 양근대교 옆 양강섬에 순교 상징 조형물 ‘영원으로 가는 사다리’를 세웠다. 9월 말 성지와 섬을 잇는 다리가 완공되면 다시 양강섬을 오가며 기도할 수 있다.
성지에서 8㎞가량 떨어진 도곡리 능말에서도 순교자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능말은 초기 한국교회 지도자 조동섬(유스티노)과 그의 아들 하느님의 종 조상덕(토마스), 복자 조용삼(베드로)과 조숙, 병인박해 때 순교한 조중구(타대오)와 조인달 등 신앙 선조들의 고향이다. 한양 조씨 한흥군 후손들이 400여 년간 집성촌을 이루며 천주교 신앙을 이어온 곳이기도 하다. 성지는 이곳에 순교자 현양비를 세우고 2021년 5월 29일 교구장 이용훈(마티아) 주교 주례로 축복식을 거행했다.

순례의 발걸음을 양평역으로 옮기면 또 다른 순교의 흔적과 마주한다. 양평역 2번 출구로 나오면 옛 양근 관아에서 순교한 신앙 선조들을 기리는 표석이 서 있다. 이곳에서는 조상덕, 장사광(베드로), 손 막달레나 등이 1801년 신유박해 때 옥중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표석을 뒤로하고 양평 읍내를 걷는다. 건널목을 건너고 사람들 사이를 지나 양평읍사무소 쪽으로 향한다. 이번에는 죽음의 흔적이 아니라 신앙 선조들의 ‘삶의 자리’를 찾아가는 길이다.
읍사무소 건너편에는 한국교회 창립의 주역인 권철신·권일신 형제의 고향을 알리는 표석이 세워져 있다. 이름난 학자였던 권철신의 문하에는 여러 젊은 학자가 모여들었다. 하느님의 종 이벽(요한 세례자)·이승훈(베드로)·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을 비롯해 복자 홍낙민(루카)·윤유일(바오로) 등이 양근에서 권철신과 교류하며 천주교 신앙을 접했다.
관아와 순교 터에서는 신앙을 위해 목숨을 내놓은 이들의 마지막을 만나고, 권철신·권일신 형제의 고향에서는 그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어떻게 믿음을 받아들였는지를 마주한다. 양근의 순례길에는 이처럼 신앙 선조들의 삶과 죽음이 한 길 위에 겹쳐 있다.

죽음에서 다시 ‘삶’으로
양근 곳곳에 흩어져 있던 신앙 선조들의 흔적은 성지에 이르러 하나의 역사로 이어진다. 순교 터와 관아가 신앙 선조들의 마지막을 기억하는 곳이라면, 성지는 그들이 살아낸 신앙과 그 신앙이 한국교회 안에 뿌리내린 과정을 되새기는 자리다.
양근은 한국교회 초기 신앙공동체가 형성된 중요한 터전이었다. 1784년 북경에서 세례받고 돌아온 이승훈이 이곳에서 권철신과 이존창, 유항검(아우구스티노)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신앙을 받아들인 이들은 아침·저녁기도를 바치며 공동체를 이루었다. 이후 이존창과 유항검을 통해 신앙은 충청도와 전라도로 퍼져 나갔다. 학문으로 시작한 진리에 대한 탐구가 신앙이 되고, 그 신앙이 사람과 사람을 통해 전국으로 뻗어간 것이다.
이 때문에 양근은 단지 여러 순교자를 배출한 땅이라는 의미를 넘어 ‘한국교회의 요람’으로 불린다. 한국교회 초기의 탄생과 성장, 복음 전파와 순교의 역사가 모두 이곳에 포개져 있다.
성지는 이 기억을 오늘의 순례자에게 이어주고 있다.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성지가 조성되기 시작했고, 순교자기념성당과 십자가의 길, 조숙·권천례 동정부부상과 여러 순교 조형물이 들어섰다. 2011년에는 새 성당과 시설이 축복됐다. 성지 곳곳에 세워진 권일신상과 윤점혜상, 권철신·권일신 형제상은 이름으로만 남은 역사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으로 다시 바라보게 한다.
성당 옆에 자리한 정자 ‘감호정’도 양근의 신앙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를 떠올리게 한다.
성지에서 남한강을 따라 1㎞가량 떨어진 곳에는 감호암(鑑湖岩)이 있다. 과거 이 바위 위에는 감호정이라는 정자가 있었고, 선비들이 이곳에 모여 시회(詩會)를 열거나 서학에 관해 논했다고 전해진다.

학문을 좋아했던 권일신은 이곳을 자주 찾기 위해 양근리 갈산에서 감호정 인근으로 이사했다고 한다. 감호암은 현재 성지의 수상 성지순례 코스를 따라 모터보트를 타고 찾아볼 수 있지만 옛 감호정은 남아 있지 않다. 성지는 그 기억을 이어가기 위해 성지 내에 같은 이름의 정자를 세웠다.
감호정을 바라보면 지금까지 걸어온 순례길이 자연스럽게 하나로 이어진다.
학자들은 이곳에서 진리를 물었고, 그 질문은 서학서를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신앙으로 이어졌다. 신앙은 공동체를 만들고 이웃에게 전해졌으며, 박해가 닥치자 그 믿음은 목숨까지 내놓는 증거가 됐다.
순교자를 가두었던 관아에서 시작해 순교 터를 지나고, 신앙을 공부하고 받아들인 이들의 고향을 거쳐 성지에 닿는다. 죽음의 흔적을 따라 걸어온 길의 끝에서 순례자는 다시 신앙 선조들의 삶을 마주한다. 성지는 그렇게 흩어져 있던 삶과 죽음의 기억을 한데 모아, 오늘의 신앙으로 이어주는 자리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