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칸 영성을 떠받치는 또 하나의 중심 기둥은 온 우주에 걸친 ‘형제성(Fraternitas)’이라 하겠습니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권고와 편지에서 늘 “형제들이여”, “모든 형제들이여”라고 청자를 부르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공동체 안의 그 어떤 형제도 다른 이의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되며, 오직 자발적인 순종과 겸손으로 서로의 발을 씻어주는 ‘작은 형제들’로 살아갈 것을 당부했습니다.
프란치스코에게 타인은 지배욕을 채우거나 이윤을 얻는 수단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아무런 대가 없이 건네주신 가장 거룩한 ‘선물’이었습니다. 실제로 성인은 유언에서 “주님께서 나에게 형제들을 주셨다”고 적었습니다. 즉 자신이 직접 형제들을 골라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십자군 전쟁의 광기가 세상을 덮친 1219년 프란치스코는 칼과 방패가 아닌 평화의 인사를 품고 적진인 이집트의 술탄 알 카밀을 형제로서 찾아갔습니다. 프란치스코는 비신자들에게 파견되는 형제들에게 “말다툼이나 논쟁을 하지 말고, 하느님 때문에 모든 인간 피조물에게 아랫사람이 돼라”는 선교 지침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성인은 술탄 앞에서도 기꺼이 작은 형제로서 자신을 낮추었고, 종교와 이념을 넘어선 형제애의 모범을 인류 역사에 새겼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온 지구를 덮치던 2020년, 아시시 성인의 권고 6번 첫 문구를 그대로 제목으로 삼은 사회 회칙 「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을 반포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은 인류가 그 어느 때보다 촘촘히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얼마나 깊이 파편화되어 있는지, 서로에게 무관심한 채 얼마나 외롭게 고립되어 있는지를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교황은 가난한 이들과 노인, 장애인, 아직 태어나지 않은 태아까지 소모품이나 폐기물처럼 취급하며 밀어내는 ‘닫힌 세상’의 그늘을 통탄했습니다. 그리고 국경과 신분, 인종과 종교의 장벽을 허무는 ‘열린 형제애’만이 문명적 위기의 해답임을 선언했습니다.
교황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어 우리의 무딘 양심을 두드리고 호소합니다. 우리는 강도를 만나 길바닥에 쓰러진 형제를 번거롭다는 이유로 지나칠 것인가, 아니면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상처를 감싸안을 것인가? 참된 형제성을 살아가는 이에게 인위적인 장벽과 울타리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 지구에 밀어내야 할 ‘이방인’과 ‘그들’은 없으며, 아버지이신 하느님 안에서 한 가족인 ‘우리’만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 모두가 두 프란치스코의 모범과 가르침에 따라 삶의 구체적인 순간마다 따뜻한 ‘만남의 문화’를 일구기를 희망하고 기도합니다. 어떤 문화도, 어떤 개인도 홀로 고립되어서는 충만한 삶에 이를 수 없다는 진리를 받아들이고, 나와 다른 이들의 고유함을 배척하는 대신 여러 면을 지닌 ‘다면체’처럼 품어 안을 때 비로소 참된 평화가 찾아올 것입니다. 십자군의 칼날 앞에 무기 없이 평화로 형제로서 섰던 성 프란치스코처럼 오늘 우리도 갈등과 불신의 장벽을 허물고 형제적 사랑이라는 최고의 보편법을 세상에서 구체적이고 창조적인 방법으로 실천해나가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