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담당하는 조선 5도에는 매우 험준한 조선의 알프스산맥이 도처에 있습니다. 신자들은 깎아지른 듯이 높은 산들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이 도저히 근접할 수 없는 깊은 골짜기마다 조금씩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1851년 10월 가경자 최양업(토마스) 신부는 스승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서, 깊은 산속에 자리한 교우촌을 찾아다니는 사목 여정을 이렇게 소개한다. ‘충북의 알프스’라고도 불리는 충북 보은군 구병산 자락. 구불구불 이어진 산길을 따라 깊은 산속으로, 더 깊은 골짜기로 들어간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에 숨은 듯 자리하고 있는 아담한 건물을 만났다. 최양업 신부는 같은 편지에서 이곳을 이렇게 전했다.
“…멍에목이라는 한 산골에 천주교 신자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을 찾는 ‘나그네’들의 거처
청주교구 멍에목성지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성당이었다. 정팔각형의 벽면 위에 팔각뿔 형태로 지붕이 올라간 성당의 모습은 언뜻 유목민들의 천막처럼 보인다. 그 모습이 마치 신앙 하나만을 보고 나그네살이를 자처했던 멍에목 교우촌의 신자들을 닮았다.
이 깊은 산골 멍에목에 정확히 언제부터 신자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교회사 기록에 멍에목이 등장하는 것은 1827년 정해박해 때부터다. 당시 상주 포교는 멍에목에 살던 복자 박경화(바오로)·박사의(안드레아) 부자를 체포했고, 대구 감영으로 이송된 두 복자는 마지막까지 하느님을 증언하다 순교했다. 박해자들의 눈을 피해 깊은 산속 멍에목까지 숨어 들어왔지만 이곳마저 발각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때부터 멍에목 교우촌의 신자들은 흩어졌다 다시 모이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1866년 병인박해 때는 김종륜(루카) 복자가 이곳에서 생활하다 울산으로 이주하기도 했다. 이듬해에는 하느님의 종 전 야고보가 체포됐고, 또 다음 해에는 하느님의 종 최용운(암브로시오)과 여 요한과 최조이 부부, 안 루카, 여규신, 최운흥 등이 붙잡혀 순교했다.
그렇게 멍에목에 박해자들이 들이닥치면 신자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다시 박해자들의 눈을 피해 깊은 산골짜기에 모여들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이곳에 숨어들었고, 같은 이유로 흩어졌고, 또다시 같은 이유로 모여와 함께 하느님을 찬미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마태 8,20;루카 9,58)고 하신 예수님을 따라 오직 하느님만을 바라보며 나그네 살이 하던 신앙 선조들이 이곳에 살았다.
모든 것을 버리고 하느님께 의탁하다
“과연 우리는 천주교를 믿습니다. 우리는 좋은 일이나 궂은일이나 모든 일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일어난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극히 좋으신 하느님께 항상 의탁하며 하느님의 헤아릴 수 없는 안배를 칭송할 뿐입니다.”
최양업 신부는 편지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하느님께 의탁하는 멍에목 신자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멍에목 신자들의 신앙은 비신자들까지도 감복시켰다. 하느님께 대한 확신에 가득한 이 목소리에 지체 높은 양반 조 씨는 큰 기쁨에 사로잡혀 모든 것을 버리고 세례를 받았다.

조 씨가 멍에목을 알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화재로 모든 것이 타 버린 마을의 이야기를 들은 조 씨는 그곳 사람들을 만나 위로하려 했다. 그런데 마을의 누구 하나 근심하거나 동요하지 않았고, 오히려 평온하기까지 했다. 그 이유가 궁금해 견딜 수 없었던 조 씨는 마을 사람들을 붙들고 그 이유를 물었지만, 도무지 납득할 만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집요한 물음 끝에 마침내 이 대답을 들은 조 씨는 비로소 만족하고 크게 기뻐했다.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하느님만을 섬기기로 결심했다. 먼저 온 집안 식구들을 온갖 구실로 여러 곳에 분산시키고 우연한 화재처럼 꾸며 집과 위패를 불태웠다. 그리고 실성한 것처럼 위장한 뒤 멍에목을 찾았고, 이곳에서 최양업 신부에게 세례를 받아 ‘바오로’가 됐다.

새롭게 태어나는 ‘세례’의 영성을 담아
최양업 신부가 집전한 세례성사는 수없이 많겠지만, 세례를 준 장소와 그 사연, 세례받은 이의 이름까지 상세하게 기록한 것은 멍에목이 유일하다. 이런 세례의 영성을 담은 곳이 성지의 ‘세례성당’이다.
정팔각형 형태의 성당은 건축 자체로 세례의 영성을 표현하고 있다. 교회 전통에서 ‘8’은 ‘여덟째 날’, 그리스도의 부활로 시작된 ‘새 창조’와 새로운 생명을 상징한다. 그리고 팔각뿔의 꼭짓점으로 모이는 천장을 바라보면 삼위일체 하느님을 표현한 성화가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 바로 아래에 세례대가 자리하고 있다. 세례를 통해 새롭게 태어난 하느님의 자녀들이 하느님을 향하고 또 하느님의 은총이 모든 백성을 향해 내리는 모습이 성당의 형상과 성미술의 조화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세례성당’ 바로 지하에는 ‘세례동굴’도 조성돼 있다. 이곳에서는 산자락에서 사시사철 흐르는 자연수로 세례갱신식을 할 수 있어, 세례의 의미를 더 깊이 느낄 수 있다. 또한 성지는 인근 펜션을 매입해 조성한 순례자의 집에서 순례자들이 세속을 떠나 하느님 안에서 깊이 머물던 신앙 선조들을 기억하며 기도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성지 담당 권상우(베드로) 신부는 “최양업 신부님께서 당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양들만 바라보고 사목하신 것처럼, 멍에목성지도 화려하고 커다란 구조물이 아닌 소박한 건물로 조성돼 있다”면서 “신앙의 고민이 있거나 하느님을 온전히 만나고 싶은 분들이 조용히 와서 오래, 깊이 머물다 가는 성지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