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은 팬데믹의 어둠 속에서 우리가 모두 같은 배를 타고 항해하는 세계 공동체임을 일깨웠습니다. 한 사람의 불행이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기에, 누구도 홀로 구원받을 수 없다는 호소였습니다. 이 외침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와 그의 이름을 선택한 교황을 잇는 깊은 믿음, 곧 하느님 안에서 함께 완성되어 가는 구원의 희망을 드러냅니다.
프란치스칸 영성에서 구원은 한 개인의 영혼이 세상을 떠나 깨끗해지는 사적인 사건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구원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이 저마다 받은 선함을 펼치고, 인간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더불어 친교를 이루며, 마침내 공동의 원천이신 하느님 안에서 충만해지는 우주적 완성을 향합니다. 이는 죄로부터의 해방을 품으면서, 창조 전체가 치유되고 완성되는 생명의 축제입니다. 교황은 “오늘날 우리는 모두 함께 구원받거나 어느 누구도 구원받지 못한다는 인식을 키워야 합니다”(「모든 형제들」, 137항)라고 말했습니다. 인간 상호 간의 의존, 그리고 인류와 피조물 간의 상호 의존을 강조한 이 말씀은 구원을 고립된 개인의 성취로 보지 않는 프란치스칸 통찰과 깊이 공명합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복음을 자기 편의에 맞추기보다 자신의 삶을 복음에 맞추었습니다. 수도규칙을 ‘해석 없이’(sine glossa) 단순하게 지키라는 성인의 당부에는 이러한 태도가 담겨 있습니다. 성인은 한센병 환자들 곁에서 형제가 되었고, 작은 벌레에서 해와 땅에 이르기까지 피조물을 한 가족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교회를 새롭게 하는 힘은 높은 자리의 권세가 아니라, 낮은 곳에서 함께 살아가는 가난과 사랑에서 솟아났습니다. 성인에게 가난은 소유를 줄이는 수행이라기보다는, 존재하는 모든 것의 주인이 하느님 아버지이심을 고백하며, 따라서 그것을 지배하지 않고 선물로 받아들이는 자유였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교회가 익숙한 울타리를 벗어나 상처받은 이들이 살아가는 변방으로 나아가기를 요청했습니다. 양 냄새 나는 목자가 되라는 당부는 그들의 고통과 희망을 함께 짊어지라는 초대였습니다. 교황은 인간과 자연을 지배의 대상으로 삼는 기술지배 패러다임과 약자를 밀어내는 배척의 경제에 맞서 보편적 형제애와 통합생태론을 제시했습니다. 평화 또한 분쟁이 잠시 멎은 상태에 그치지 않습니다. 모든 이의 존엄이 존중되고, 공동의 재화가 정의롭게 나누어지며, 깨어진 관계가 회복될 때 평화는 삶에 뿌리내린다는 것이 교황 프란치스코의 가르침입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귀천 800주년을 맞는 오늘, 성인의 목소리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가르침과 만나 더욱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두 프란치스코는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복음의 기쁨으로 교회와 세상을 새롭게 하라는 같은 부르심에 응답했습니다. 그 길에서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일과 피조물을 보살피는 일은 갈라지지 않습니다. 모두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맺어진 형제자매이기 때문입니다.
“가서 나의 집을 고쳐라.” 이 부르심은 이제 우리 각자의 문을 두드립니다. 오늘 우리가 고쳐야 할 집은 탐욕으로 상처 입은 지구이며, 차별과 미움으로 갈라진 사회이고, 형제의 고통에 무디어진 우리 마음입니다. 이 집을 돌보는 일은 거창한 선언보다 가까운 형제에게 귀 기울이고, 가난한 이와 몫을 나누며, 피조물의 신음을 외면하지 않는 데서 시작됩니다. 우리 모두 한 배에 탄 형제자매로서 이 순례에 함께 나서기를 기도합니다. 하느님의 선하심을 노래하며 세상에 자비를 실천하는 그 걸음마다, 교회와 세상을 다시 세우는 구원의 여정이 이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