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회 초기 신앙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던 경기도 남양주 마재마을. 이곳에는 신분을 가리지 않고 복음을 전하며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지켜낸 복자 정약종(아우구스티노)과 그 가족의 삶이 깃든 의정부교구 남양주 마재성지가 자리하고 있다. 성가정 정원과 한옥 성당, 약종 동산을 따라 걸으며 대를 이어 신앙을 증거한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마재마을, 초기 한국 천주교 주역들의 생활 터전
경기도 남양주 팔당댐과 양평 두물머리 사이, 팔당호로 삼면이 둘러싸인 능내리 마재마을에 들어선다. 이내 고요하고 소박한 마을과 어울리는 성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비교적 아담한 크기의 한옥 성당과 기와 담벼락, 벽화들이 조화를 이룬다.
마재마을은 정약종과 형제들의 고향이다. 형제는 집 안에 보관돼 있던 한역 서학서를 읽고 천주교를 접했다고 전해진다. 1784년에는 이곳을 방문한 이벽(요한 세례자)이 정약전, 약용 형제와 함께 배를 타고 상경하며 천주교 교리에 대해 토론하기도 했다. 이처럼 마재마을은 한국 천주교회 창립 주역들의 생활 터전으로 알려져 있다.
성지는 정약종과 부인 성녀 유조이(체칠리아), 아들 복자 정철상(가롤로)·성 정하상(바오로), 딸 성녀 정정혜(엘리사벳) 등 가족을 위해 봉헌된 성지다. 2006년 설정돼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성지에 들어서자 오른편에 ‘성가정 정원’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정원 한가운데 한복을 차려입은 청동 예수상을 중심으로 정약종 성가정의 모자이크 타일 벽화, 십자가의 길 등이 담벼락을 따라 걷는 순례자를 반긴다.
벽화와 팻말 속 초상화들을 한 명 한 명 자세히 들여다보며 어떤 인물인지 구별해 보는 소소한 재미가 있다. 초상화 속 정약종은 한 손에 저서 <주교요지>를 들고 서 있고, 정하상은 저서 <상재상서>를 들고 있다. 또 정정혜는 비교적 젊은 여성으로, 그 어머니 유조이는 노년기 여성으로 표현돼 있다. 정원의 중간 문을 지나면 오른편으로 ‘마재의 성가정’ 모자이크 타일화가 나온다. 타일화에는 가족 5명이 성모 마리아를 중심으로 한데 모여 있다.
성지의 특징 중 하나는 조선 시대 죄인의 목에 씌우던 형구인 ‘가’(枷)를 본뜬 조형물들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성가정 정원 가장 안쪽의 예수상도 칼을 목에 걸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표현됐다. 성지를 둘러보며 이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가족 모두가 순교한 정약종 성가정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정약종 성가정, 신앙을 이어가다
정약종은 약전과 약용보다 늦은 1789년 세례를 받았지만, 머슴이나 천민 출신 신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서울을 왕래하며 지도층 신자들과 활발하게 교류했다. 또한 복자 주문모(야고보) 신부가 세운 평신도 교리 단체인 ‘명도회’의 초대 회장을 지내는 등 형제 중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해 한국교회의 기틀을 다지는 데 큰 몫을 했다.
한문을 모르는 이들도 쉽게 교리를 익힐 수 있도록 여러 한문본 교리서의 내용을 추려 우리말로 된 <주교요지>를 지어 선교에 큰 힘을 보탰다. 복자는 1801년 신유박해 때 끝까지 신앙을 지키다 순교했다.
성 정하상과 정정혜는 부모의 신앙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정약종과 장남 정철상이 순교하자 유 체칠리아는 자녀들을 이끌고 이곳 마재로 피신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이들은 바느질과 길쌈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유 체칠리아에게서 경문을 익혀 신앙을 이어갔다.
성 정하상 남매는 성장하여 신유박해 이후 뿔뿔이 흩어졌던 교우들을 돌보거나 교리를 가르치며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특히 정하상은 조선에 성직자를 보내 달라고 요청하기 위해 조정의 감시를 피해 중국을 왕래했고, 정정혜는 선교사들의 처소를 돌보고 신자들에게 성사를 받도록 권고했다.
조정의 감시를 피해 가며 신앙생활을 이어오던 이들은 1839년 기해박해를 피하지 못하고 체포됐다. 정하상 남매는 서소문 밖 형장에서 순교했고, 유 체칠리아는 갖은 문초를 받다가 79세로 옥중 순교했다.

성지에 새겨진 신앙과 순교의 기억을 되새기다
성가정 정원을 나서자 널찍한 잔디밭 뒤로 한옥 성당과 명례방이 보인다. 성당 앞을 따라 뻗은 툇마루와 입구의 성모자상, 나무 창호가 어우러진 모습은 마치 초기 한국교회의 소박함과 정겨움을 드러내는 듯하다. 성당 처마 아래에는 성 토마스의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는 신앙 고백이 적혀 있다.
성당 양쪽 창호를 활짝 열어두면 아늑했던 공간이 한순간에 탁 트인다. 성지를 찾은 신자들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앉아 순교자들을 기억하며 묵상하기 좋은 공간이다. 가만히 앉아 제대 뒤 한복을 입은 예수를 바라본다. 성당뿐 아니라 성지 곳곳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예수상과 성모상을 어렵지 않게 마주친다. 성지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어우러져 유독 더 어울린다.
성지 뒤쪽 산기슭을 따라 조성된 ‘약종 동산’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입구에는 정약종과 정철상이 정겹게 손을 맞잡은 부자상이 서 있다. 동산에 오르면 순교현양비와 성모자상, 그 뒤 언덕에 자리한 자비의 예수상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몇몇 순례자가 성모자상 앞에 조용히 촛불을 밝히며 기도를 바친다.
약종 동산의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순례의 마지막 장소에 다다른다. 못 자국이 선명한 예수의 발 동상과 자비의 예수상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신분을 가리지 않고 신앙을 전했던 정약종 성가정의 노력은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에 천주교가 뿌리내리는 데 큰 힘이 됐다. 이들 성가정의 흔적이 남은 이곳에서 목숨을 바쳐 신앙을 지켜낸 이들의 발자취를 되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