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신문은 안중근(토마스) 의사 의거 100주년을 맞아 `2009년, 안중근을 만나다`특별 기획을 마련, 일제 강점기 암울한 시기에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안 의사의 신앙과 삶을 재조명한다.
그 첫 걸음을 안 의사가 100년 전 이토 히로부미 사살을 위해 머물렀던 하얼빈 현장에서 출발한다. 서울대교구 예비신학생 34명이 참가한 청소년 중국문화탐사 프로그램 `도마 안중근`을 1월 12일부터 6일간 동행취재, 하얼빈과 의거 후 안 의사가 투옥됐던 뤼순(旅順) 감옥 등 현장을 방문했다. 이 프로그램은 (재)서울가톨릭청소년회(이사장 조규만 주교) 주관, 구립서초유스센터(관장 김남성 신부) 주최로 이뤄졌다. 에비신학생들과 함께 안 의사 발자취가 서려있는 현장을 둘러보며 나라와 사람을 향한 그의 사랑을 되새겨본 취재기를 먼저 두차례 걸쳐 싣는다.
#냉동창고 `하얼빈`의 문을 열다
하얼빈 공항 문을 나선 예비신학생들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너무 춥다" "이렇게 추운 적은 처음"이라는 말이었다.
얼마 전 무한도전이라는 예능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추위적응 훈련을 한다며 영하 20도의 냉동창고 안으로 들어간 적이 있었다. 출연자들의 눈썹과 수염에는 금세 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았고 창고안의 추위는 말 많은 개그맨들의 입조차 얼어붙게 할 정도로 강력했다.
하얼빈의 1월 평균 기온이 영하 20도인데다 세찬 바람까지 부니 추위가 냉동창고 저리가라다.
차가운 날씨 때문인지 몰라도 하얼빈에서 만난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딱딱했다. 미소를 띠는 식당 종업원을 볼 수 없었고 거리의 시민들 표정도 날씨 못지않게 차갑다.
▲ 예비신학생들이 하얼빈시 쑹화강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젊은 독립운동가, 그를 만나다
하얼빈시 중심가에 있는 조선민족예술관 2층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는 안중근 의사의 생애와 의거 현장을 사실적으로 표현해 놓은 그림ㆍ모형 등이 전시돼 있다.
1879년 황해도 해주읍에서 태어난 안 의사는 천주교 신자였던 아버지 안태훈의 영향으로 18살 때 세례를 받았다. 세례 후 선교사로 활동하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독립운동가로 활약했다.
1909년 침략의 원흉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 역에서 사살한 후 이듬해 31살의 젊은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기념관에서 학생들이 가장 관심을 보인 곳은 의거 현장을 재현해 놓은 모형이었다. 안 의사가 히로부미를 사살하는 상황을 모형을 통해 생생하게 본 예비신학생들은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한 예비신학생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안 의사의 모형 뒤에 바짝 붙어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옆에서 지켜보던 김형석(서울 화양동본당 주임) 지도 신부가 "왜 안 의사가 아닌 이토 히로부미를 찍냐"고 묻자 그 아이는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할 때 안 의사의 심정을 느껴보고 싶었다"며 멋쩍게 웃었다.
히로부미를 저격할 당시 안 의사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그는 의거 전 반드시 거사가 성공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저격 직후 성호를 그은 뒤 `대한 만세`를 외친 사실은 그에게 신앙생활과 민족운동은 분리된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의거 전후의 안 의사의 신앙생활과 행동을 미뤄볼 때 그에게는 평화를 원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프로그램 참가 전 안 의사가 천주교 신자인 줄도 몰랐다는 조상희(제오르지오, 14)군은 "안 의사가 히로부미를 죽인 것은 우리나라와 세계 평화를 위해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며 "안 의사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본받고 싶다"고 말했다.
▲ 예비신학생들이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 안 의사의 의거 현장을 재현한 모형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