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곳곳의 많은 가톨릭 신자들은 성지를 순례하며 선조들의 깊은 신앙을 묵상한다. 그 신앙에 깃든 정신을 각자의 삶에서 꽃피워내려 노력한다. 우리가 기억하며 본받을 수 있는 신앙 선조가 있고, 그들의 신앙을 항상 엿볼 수 있는 성지가 발 닿을 거리에 있다는 것은 하느님의 축복이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세 번째로 설립된 성 마리아 엘리사벳 성당을 찾아갔다. 러시아인들의 가슴에 남아있는 성인들과 주교들의 유해가 묻힌 가톨릭의 산 역사다.
#흉흉한 성당에 울려 퍼지는 러시아어 성가

▲ 성 마리아 엘리사벳성당 전경.
해로 설립 150돌을 맞았지만 그 기쁨은 누리지 못한 채 성당 복원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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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덜컹거리는 지하철을 타고 시내 외곽으로 빠져나갔다. 러시아에서 10년 넘게 공부한 박재민(요셉피나, 25)씨와 먼지 풀풀 날리는 도로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한 20분쯤 지났을까. 버스 차장에게 차표를 건네고 10여 분을 달리다 인적이 드문 곳에 내렸다.
미사시간 10분을 남겨두고 두리번거리다 폐허 같은 성당을 발견했다. 페인트 칠이 벗겨진 낡은 철문을 열고 콘크리트 바닥으로 이어진 복도를 따라 들어가니 신자들이 보인다. 신자는 4명. 독일인 신부가 신자들과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다.
제대 위에는 150이란 숫자가 걸려있고, 소박하게 꾸민 제대 앞에는 마른 장미 두 송이가 꽃병에 덩그러니 꽂혀있다. 거친 시멘트 바닥에는 두꺼운 카펫이 깔려있다. 곳곳에 못을 뽑아낸 흔적과 녹슨 창틀이 눈에 들어온다.
곧 미사가 시작됐다. 한 신자가 비닐로 씌워 엮은 낡은 성가책을 나눠준다. 반주 없는 러시아어 성가가 실험실 같은 흉흉한 성당에 울려 퍼진다. 성찬 전례 시간이 되자, 한 어린이가 장판을 잘라 만든 장궤틀을 나눠준다. 신자들은 장판을 바닥에 깔고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은다.
제대 위에 걸린 150이란 숫자는 본당 나이다. 1859년에 설립된 후 한 세기 반의 시간은 하느님께 매달려 살아야 했던 나날이었다. 휑한 벽에 걸린 지거쾨더의 성화 `십자가의 길`이 본당 역사를 한 눈에 보여주는 듯 하다.
# 빼앗긴 신앙에도 부활은 오는가

▲ 상트 페테르부르크 성 마리아 엘리사벳성당에서 신자들이 평일 저녁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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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시간. 사진기를 만지작거리는 사이에 본당 신자들이 동시에 손을 내밀고 있었다. 남을 위해 내어주는 빈 손들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리하르트 슈타크 신부(Richard Starvk, 말씀의 선교 수도회)는 미사가 끝나자 따뜻한 미소로 반겼다. "질문할 거리가 많다"고 말하자, "많은 답변을 해 줄 수 있다"며 선한 웃음을 내비쳤다. 슈타크 신부는 곧 성당 지하 묘지로 안내했다.
붉은 벽돌에 시멘트를 덧칠한 기둥 사이로 묘지터가 보였다. 곳곳에 시멘트가 발린 이유는 사회주의 시절 당시, 공산당원들이 묘지 벽을 장식했던 모자이크화가 보이지 않도록 강제로 덧칠을 했기 때문이다.
슈타크 신부는 "지하에 11명의 성인과 주교들의 유해가 묻혀있다"고 소개했다. 그런데 돌과 흙으로 덮힌 묘지는 열어본 흔적이 역력하다.
"사회주의 시절, 공산당원들은 묘지를 파헤쳐 금으로 된 십자가를 꺼내는 일이 많았습니다. 누가 어디에 묻혀 있는지도 확인이 어렵습니다."
성당 지하 묘지는 돌려받기라도 했으니 그나마 나은 상황이다. 4만 명의 신자와 주교들의 유해가 묻힌 성당 주변땅은 아직 돌려받지 못했다.
이 곳은 1711년에 외국인 신자를 위해 설립된 첫 가톨릭 묘지다. 그리고 148년 후 성 마리아 엘리사벳 본당이 설립됐다. 그러나 사회주의 혁명으로 많은 성당이 폐쇄되면서 성당도 문을 닫아야 했다.
신부와 신학생, 수도자들이 형무소로 끌려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성당 지붕에 달린 십자가는 내려졌고, 시계탑도 무너졌다.
가톨릭 묘지가 폐쇄된 건 1927년. 강탈 당한 자료와 성물들은 박물관으로 넘어가고, 성당 건물은 감자 보관 창고로 변했다.
50년 후에는 국가 전기 연구소로 사용하기 시작, 1992년 공산정권이 무너지면서 연구소는 문을 닫았다. 성당을 다시 돌려받은 건 2002년이었다.
# 러시아인들을 위한 `신앙의 보고`

▲ "언제 다시 복원할 수 있을까요?" 본당 신자가 독일인 리하르트 슈타크 신부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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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시절은 이제 역사가 됐지만, 그 아픔은 아직도 머물고 있다. 해마다 위령의 날(11월 2일)이 되면 상트 페테르부르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