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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정부는 현행 법에 따라, 러시아 종교단체의 초청을 받은 경우에만 외국인들의 선교활동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와 러시아 정교회는 벽을 허무는 노력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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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뜨거운 태양에 시원한 바람…. 핀란드 만에서 흘러나오는 네바 강을 어깨에 두고 자전거 페달을 밟는 젊은 연인들. 긴 겨울을 보내고 여름을 기다린 러시아 여자들의 즐거운 수다. 그리고 이 모든 사람들보다 먼저 태어난 18,19세기의 바로크 양식의 웅장한 건물들.
모스크바에 도착하자마자 다음 날 비행기로 1시간 만에 날아온 상트 페테르부르크. 마중 나온 한국인 유학생의 차에 몸을 싣고 내다 본 창문에는 파란 하늘의 구름이 정교회 성당 양파 모양의 지붕에 걸려 있었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크다는 이사크 성당이다.
#천국은 작은 것에서부터

▲ 마굿간을 개조한 니즈니 노브고로드의 성모승천성당 내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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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 페테르부르크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 자작나무 잎들이 햇살에 살랑이는 것을 보며 아침에 모스크바 사제관 경당에서 김대영(모스크바대교구 모스크바 한인본당)ㆍ양해룡(서울대교구 사목국 선교전례사목부) 신부와 미사를 봉헌한 일이 생각났다. 경당의 한쪽 벽면은 자작나무 숲 사진으로 가득했다.
김 신부는 "정교회가 공산주의의 박해를 받을 당시 정교회 신부님들이 자작나무 숲에서 이 그루터기를 제대 삼아 미사를 봉헌했다"고 설명했다. 생각해보니, 1930년대 후반 러시아에 잠입해 선교활동을 했던 예수회 취제크 신부도 그루터기를 제대 삼아 미사를 봉헌한 장면을 책 속에서 만났었다. 도시를 벗어나 깊은 숲 속에서 하느님과 만나는 기분은 어땠을까.
이튿날, 러시아에서 하나밖에 없는 가톨릭 신학교로 향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한인공소 신자들은 신학교 내 성당에서 주일미사를 봉헌한다.
1843년에 문을 연 `사도의 모후`란 이름을 단 신학교에는 가톨릭을 상징할 만한 십자가 하나도 걸려있지 않았다. 공산정권과 러시아 정교회의 눈을 피해 신학교를 운영해야 했기에 가톨릭을 나타내는 어느 것도 걸 수가 없었다. 신학교는 1919년 교회의 모든 사유재산을 강제 징발하는 `인민회의 선포령`에 따라 잠시 문을 닫고, 74년 만에 다시 문을 열었다.
1995년 신학교를 방문한 고 김수환 추기경은 10여 명 남짓한 러시아 신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 가톨릭교회는 겨자씨만큼 작지만 천국은 이렇게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이 겨자씨가 바로 러시아 가톨릭교회다."
당시 신학생들은 박수로 환호했다. 그리고 14년 전 그 겨자씨 학생들은 어디론가 뿌려져 열매를 맺고, 다시 새로운 겨자씨 22명이 재학 중이다.
# 조용히 보이지 않게… 그럼에도 하느님은 보시기에
모스크바에서 승용차로 6시간을 달렸을까. 수십만 그루의 자작나무를 지나 보내고 도착한 곳은 러시아의 북서부에 있는 `니즈니 노브고로드`.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로, 가는 길에 적어도 4개 교구를 지나갈 수 있다. 그러나 모스크바에서 400㎞를 달려 도착한 니즈니 노브고로드는 모스크바대교구의 손바닥 안이었다.

▲ 러시아의 북서부에 위치한 니즈니 노브고로드의 성모승천본당 마리오 베네라티 신부가 설계도를 가리키며 마굿간 성당으로 개조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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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도착한 곳은 성모승천성당. 이 곳은 1854년에 설립됐지만 공산정권으로부터 강제 징발돼 1925년 문을 닫았다. 신앙의 터전을 잃어버린 신자들은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등 주변국가로 건너가 미사를 참례하며 신앙생활을 유지했다고 한다. 집에서 미사를 봉헌하려면 커튼을 치거나 창문으로 가려야 했다. 그러나 본당 신자들에겐 더 큰 아픔이 있었다. 1942년 안토니오 주임신부가 공산당에게 총살을 당해 목숨을 잃은 것이다. 당시 러시아는 스탈린 시절까지 4000만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순교했다.
성모승천본당의 마리오 베네라티(Mario Benerati) 신부는 2층의 전시실로 안내했다. 전시실에는 안토니오 신부 초상화를 비롯해 본당 신자들의 초창기 모습들이 전시돼 있었다. 베네라티 신부는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의 피는 우리들에게 신앙의 씨앗이다"고 말했다.
성모승천본당은 1996년 마굿간으로 쓰던 건물을 돌려받아 최근 성당으로 개조했다. 또 가난한 노숙인들을 위한 무료 급식도
가톨릭평화신문 2009-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