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따뜻한 밥 한 공기` 봉사자가 건네는 따뜻한 정성이 추위로 차가워진 노숙인의 손에 온기를 불어 넣는다.
"추운데 잘 있었어요?"
`나야 잘 있었지. 그런데 무릎이 아파서 일을 할 수가 없어.`
16일 늦은 밤 서울 을지로3가 지하철역 입구. 서울 삼성산본당(주임 이철학 신부) 사회사목분과장 신재훈(프란치스코)씨가 역 근처에서 서성이는 한 노숙인에게 다가가 안부를 묻자 노숙인은 반갑게 아는 체를 하며 일을 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털어놓는다.
삼성산본당 신자들이 매주 토요일 밤 을지로 일대 지하철역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노숙인들에게 무료 급식봉사를 시작한 지 어느덧 3개월째다. 매주 봉사하는 신자들은 이제 노숙인들과 안부를 묻고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친근한 사이가 됐다.
▲ "주님, 여기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다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소서!"
급식을 시작하기 전 기도를 바치고 있는 삼성산본당 신자들.
10여 년 전 시작된 인연
10여 년 전 IMF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삼성산본당과 노숙인들의 인연이 시작됐다. 수많은 사람이 거리로 내몰렸고 본당 신자들은 그들을 찾아가 간식과 양말 등을 나눠줬다.
또 다시 경제가 어려워지자 신자들은 지하철역을 찾아갔다. 예상대로 노숙인이 부쩍 늘어나 있었다. 본당 사회사목분과 회원들과 신자들은 지난해 11월부터 매주 토요일 밤에 역을 찾아 굶주린 노숙인들에게 따뜻한 밥을 대접했다.
이날 급식봉사에는 30여 명이 함께했다. 을지로3가역 입구에서 20여 명의 노숙인들에게 음식을 나눠 준 후, 가장 많은 노숙인들이 생활하는 을지로입구역 지하보도로 향했다.
봉사자들이 밥과 국이 든 보온통을 들고 지하도에 들어서자 이미 100여 명의 노숙자들이 길게 줄을 서 삼성산본당 신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새치기를 하거나 밥을 빨리 달라고 보채는 노숙인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질서정연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식사를 하기 전 기도는 필수다. 3개월이 지나다보니 봉사자들을 따라 어설프게 성호를 긋는 노숙인들도 눈에 띈다. 봉사자들은 노숙인들에게 "안녕하세요!"라고 큰 소리로 인사를 한 후 급식을 시작한다. 이날 메뉴는 흑미를 섞어 지은 햅쌀밥과 소고기 무국, 김치, 과일 샐러드다.
▲ "맛있게 드세요!" 급식봉사활동을 나온 한 청년이 활짝 웃는 얼굴로 노숙인에게 음식을 건네고 있다.
배식을 맡은 봉사자 10여 명은 활짝 웃는 얼굴로 노숙인 한 명 한 명에게 "맛있게 드세요. 건강하세요"라고 외친다. 웬만한 식당 종업원보다 친절하다. 적지 않은 노숙인이 "감사히 먹겠습니다"라고 화답한다.
배식을 하지 않는 봉사자들은 몸이 불편해 줄을 설 수 없는 노숙인들을 찾아서 식사와 따뜻한 물을 배달해 준다. 또 몇몇 봉사자들은 얇은 옷을 입고 있는 노숙인들에게 입고 있던 외투를 기꺼이 벗어준다. 본당 사회사목분과는 몇 주 전부터 본당 신자들에게 잘 입지 않는 외투를 기증해 달라고 부탁했다.
봉사자들은 기증받은 외투를 출발 전부터 껴입고 있다가 외투가 필요한 노숙인들에게 벗어준다. 상자에서 꺼내 나눠주는 것보다 노숙인들이 훨씬 좋아한다고 한다. 봉사자들의 세심한 배려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대개 노숙인들은 사진 촬영을 극도로 꺼린다. 하지만 이곳 노숙인들은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고개를 돌리는 사람, 항의 한 마디 하는 사람 없이 무덤덤한 표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