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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정란 수녀가 교육의 기회에서 소외된 청소년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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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더위는 익숙하지 않다. 한국에선 30℃만 넘겨도 헉헉거렸는데, 방글라데시에선 40℃가 예사다. 한낮 최고 온도는 50℃를 턱걸이 할 때도 있다. 숨이 턱턱 막혔다. 하늘은 그렇게 세상을 녹여 버릴 듯 불볕을 퍼부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 내렸다. 우기인 탓에 높은 습도도 견디기 힘들었다. 엉금엉금 그늘을 찾아 들어도 시원하지 않았다. 그 찜통 열기 속에서 긴 소매, 긴 치마의 수도복 입은 세 수녀가 ‘이웃을 위한 땀’을 흘리고 있었다.
동물원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다. 구경거리가 됐다. 외국인을 거의 보지 못한 때문이다. 길거리만 나서면 지나던 여성들이 힐끔거린다. 젊은 청년과 아이들은 아예 가까이 와서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럴 만도 했다. 반바지에 샌들, 큰 카메라 가방…. 방글라데시 사람들에겐 이국적인 모습이었을 것이다. 방글라데시 남자들은 반바지를 거의 입지 않는다. 바지를 입을 때도 있지만, 서민들은 대부분 긴 천자락을 허리춤에 질끈 묶어 입는 전통의상인 ‘룽기’(lungi)를 입는다. 반바지의 이방인은 구경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함께 가는 수녀들은 그런 호기심의 눈으로 쳐다보지 않았다. 수녀들은 이미 마을 사람들과 함께 섞여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이방인이 아니었다. 4년 만에 방글라데시 사람이 다 됐다.
최선미(요셉피나) 수녀와 함께 길을 나섰다. 방글라데시 여성들의 자립을 위해 전통 자수를 가르치는 곳을 찾기로 했다.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모르모(19)가 환한 웃음으로 최 수녀를 반겼다. 웃는 얼굴이 예쁘다. 그런데 눈에…. 슬픔이 가득하다. 태어난 이후 생선과 고기를 먹어본 기억이 없다고 했다. 시장에 가면 언제든 살 수 있는 생선이지만, 소녀에게는 ‘왕의 식탁’에나 오를 법한 음식이었다. 아버지는 어릴 때 집을 나갔다. 홀어머니는 모든 고생을 하며 세 자녀를 키웠지만, 결국 암에 걸렸고, 병원에 한번 가지 못하고 2년 전 세상을 떠났다. 돈이 없어서 진통제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고 그렇게 떠났다. 오빠와 남동생이 이웃집 허드렛일을 도와 겨우 쌀을 구해 오곤 했지만 이웃도 가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굶고 또 굶었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사치였다. 초등학교도 졸업 못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던 중 최 수녀를 만났고, 지금은 한국 전통 자수를 통해 희망을 꿈꾸고 있다.
“이 아이들이 다시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공부할 시기를 놓친 아이들에게도 학업의 기회를 제공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수녀원 건물조차 없어 일반 가정집에 세들어 살고 있는 형편이다. 학교는 언감생심이다. 하지만 꿈마저 버릴 순 없다.
“이 아이들을 이대로 놔두면 평생 동안 비참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소녀들을 위한 교육 시설을 만들고 싶습니다.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집을 짓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 먹는 것 생활 필수품을 줄여서 돈을 모아 보지만 한계가 있다. 후원금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수도회가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아, 후원자가 극소수다. 하지만 최 수녀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돈이 없고, 가난하다고해서 하느님의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당장은 아쉬운 대로 현지 방글라데시 방인 수도회 소유의 건물 한 귀퉁이를 빌려서 쓸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셋방살이를 계속할 순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도 급한 것은 아이들의 생계비와 당장의 학비다. 생계조차 위협받는 상황에서 학교 교육은 먼 나라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특히 남자 아이 우선으로 교육을 시키기 때문에 여자 아이들은 더욱 교육 기회에서 소외되고 있다. 초등학교 학생 및 중고등학교 청소녀를 위한 학비 및 생활비가 월 5만 원 정도 된다.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최 수녀는 소녀가장과 미망인 등에게 전통 자수를 가르쳐 한국에 판매한다는 계획이다. 단순히 시혜적 도움을 받는 것보다 땀의 대가를 통해 재활의 꿈을 키운다는 취지다. 커튼, 방석, 식탁보 등을 한국의 전통 기법과 방글라데시 전통 문양을 접목해 만들려고 한다.
바느질에 열심인 눈이 불쌍한 아이, ‘모르모’의 얼굴은 밝았다. 맑은 미소가 한 번도 떠나지 않았다. 손재주가 제법이다.

▲ 최선미 수녀가 현지 가톨릭교회가 운영하는 병원을 찾아 임종을 앞둔 환자를 돌보고 있다.
방글라데시에서 서민들은 복지병원이 아니면 거의 이용하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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