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눈이 초롱초롱했다. 아이들은 한국 수녀들의 가르침을 하나라도 더 듣기 위해 수업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잠시 밖으로 나왔다. 남루한 모습의 한 아빠가 학교로 들어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공부하고 있는 딸을 불렀다. 딸은 아빠가 학교에 온 것이 창피한 듯, 자꾸 뒤를 돌아보며 친구들 눈치를 보며 밖으로 나왔다. 아빠가 시장에서 막 사온 듯 망고 과일 하나를 딸의 손에 쥐어 주었다. 점심을 챙겨주지 못해 대신 가져온 모양이었다. 아이는 낚아채듯 과일을 받아들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교실로 달려갔다. 아빠는 그 뒷모습을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 딸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발걸음을 돌렸다. 아빠의 눈과 기자의 눈이 허공에서 만났다. 슬퍼 보였다.
닮았다. 한국 초기 교회 모습이다. 그리스도교 신자 마을에 살고 있는 로빈 센(Robin Sen·45)·파트리시아 센(Patrisia Sen·35) 부부. 1991년 결혼해 카콘(18), 카논(16), 코나(12) 세 딸을 두고 있다.
방글라데시의 대부분 그리스도교 가정은 주일을 철저히 지키는 등 한국 초기 교회 신앙인들과 같은 열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성당이 멀어도 서너 시간씩 걸어서 미사에 간다. 가난한 모습도 닮았다. 무슬림이 대세인 탓에 웬만해서는 정계나 사회에 진출하기가 힘들다. 재산권 소유 및 학교 교육 등에 있어서도 보이지 않는 차별을 당한다. 그러다 보니 가톨릭 신앙인들은 생계를 이어가는 것조차 힘들다.

▲ 고정란 수녀와 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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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가지고 있지 않은 로빈씨 부부도 마찬가지. 부부가 함께 이웃집 농사일 등 허드렛일을 하지만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도 힘들다. 게다가 딸 셋을 교육시켜야 했다.
이웃에서는 “아들도 아닌 딸을 왜 교육시키느냐”, “나중에 시집이나 보내라”며 만류했지만 어머니는 그럴 수 없었다.
“저희 부부는 간신히 글자만 읽을 수 있을 정도의 교육밖에 받지 못했습니다. 딸들에게 만큼은 이 고생을 물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부부는 딸들을 가르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빚을 냈다. 그러다 보니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대로라면 딸들을 제대로 교육시키지도 못하고, 빚은 빚대로 떠안게 될지로 모른다.
하지만 최근에 희망이 생겼다. 한국 수녀들의 도움으로 최소한의 성의를 보이는 차원에서 교육을 계속 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교육이 필요합니다. 교육을 받고 싶은 사람은 모두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더 이상 평생 동안 가난의 한을 품고 살아가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고정란(피앗) 수녀가 가지고 있던 감자 중에 3개를 어머니에게 줬다. 감자가 그리 비싸지는 않지만 가난한 이들은 그것도 사 먹지 못할 때가 많다. 감자 3개는 이 가정에 좋은 한 끼 식사가 될 것이다.
수녀가 먹을 것이 떨어지면 말 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어머니는 부끄럽다면서 살짝 웃더니 마침내 눈물을 쏟았다. 힘든 것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이겨내던 어머니였다. 수녀도 함께 울었다.
첫째 딸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 둘째 딸의 꿈은 간호사다. 딸들이 말했다.
“열심히 할게요.”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 말에 또다시 말을 잊었다. 가족은 그렇게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그 무거운 침묵을 뒤로하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 불라키푸르 공소에서 만난 성모님의 얼굴은 참으로 슬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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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그리스도교 마을인 불라키푸르(Bhulakipur) 공소로 향했다. 수녀들 숙소에서 1시간 30분 거리다. 김면정(노엘) 수녀는 다른 방인 사제 및 교리교사와 함께 이곳에서 젊은 부부들을 대상으로 사회 교리를 가르쳤다.
아름다운 신앙 공동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