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찌는 듯한 더위를 예고하듯 화창한 아침, 아강그리알 미션 직원 한 명이 난처한 표정으로 찾아온다.
"신부님, 간밤에 수탉이 병아리 5마리를 죽였어요."
"뭐? 닭 잡아랏!"
순간 네댓 명이 몽둥이와 돌멩이를 들고 닭을 향해 뛴다. 사제관 마당을 탈출한 닭이 소성당 마당으로 푸드덕대며 달아났지만 얼마 안 돼 두 다리를 잡힌 채 돌아온다. 음식이 귀한 수단에서 병아리를 죽이고 다른 닭들마저 괴롭히던 그 수탉은 바로 응징(?)을 받았다. 이날 점심엔 닭볶음탕이 나왔다.
지금은 한국에서 식량 컨테이너를 받아 이것저것 한국 음식을 해먹지만, 컨테이너가 도착하기 전 처음 몇 달 동안 신부들은 먹을 게 없어서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신부들은 이웃 콤보니수도회에서 파스타 등을 얻어먹고, 현지식으로 식사를 때우며 힘겹게 정착기를 보냈다.
그런데 한국 음식이라고 질이 썩 좋은 것은 것도 아니다. 컨테이너로 실어온 식량들은 모두 인스턴트 가공식품인데다 거의 다 유통기한이 2년씩 지났거나 며칠 안 남은 것들이다.

▲ "아이고, 내 새끼~."
울상을 짓고 있는 아이를 꼬옥 안아주는 이승준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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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안 죽어요. 하하하."
늘 호탕한 웃음을 달고 사는 이승준 신부가 또 한 번 식당이 떠나가라 웃는다. 그리고 곰팡이 가득한 잼을 쓱쓱 섞어 빵에 바른다.
가난한 수단 사람들은 하루 평균 한끼 식사를 하기가 다반사다. 배가 고프면 잠이 오지 않기 때문에 그 한끼는 주로 저녁에 먹는데 이런 식습관 때문에 위장병이 많다. 소는 재산이기에 웬만해선 먹지 않고, 돼지는 수단에 없다. 염소는 귀한 손님이 왔을 때만 잡아 부위별로 요리한다. 우기에 나무에 열리는 시큼한 과일 `독`을 따먹는 게 비타민 C를 섭취하는 거의 유일한 길이다.
그런데 최근 신부들에게 걱정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 얼마 전 사제관에서 기르는 개 `죠이`가 새끼를 다섯 마리나 낳았는데, 그 중 네 마리가 암컷이다. 암컷은 새끼를 자꾸 낳기 때문에 아무도 데려가려 하지 않는다. 사람 먹을 것도 없는 마당에 개를 먹일 건 더더욱 없기 때문이다. 신부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수단에 보신탕 문화를 전파해야겠다"며 한숨을 쉰다. 수단에서는 사람도, 소도, 개도 모두 비쩍 말랐다.

▲ 광주과학기술원이 기증한 정수기로 우물물을 정수하고 있는 한 신부와 아이들. 자전거 페달을 밟아 물을 정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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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식이다!"
그날 저녁 컴퓨터를 하던 한만삼 신부가 창밖을 내다보더니 뛰쳐나간다. 이미 신학생 두 명이 통을 갖다놓고 뭔가를 빗자루로 쓸어 담고 있다.
`윽~`
우기인 이맘때 비가 쏟아지고 나서 잠시 날씨가 개면 땅속에 있는 수개미들이 밤에 나와 빛이 있는 곳으로 모여든다. 전등 밑에 바글바글한 이 잠자리만 한 수개미들을 물이 담긴 대야에 빗자루로 쓸어 담는다. 태양광발전으로 아강그리알에서 이곳에만 유일하게 밤에도 빛이 있다. 물에 담지 않아도 수개미들은 30분만 날면 날개가 다 떨어지는데, 키로 날개를 털어내고 몸통을 볶아 우리가 번데기 먹듯 먹는다.
다음날 이 신부가 `고단백 영양식`이라며 식탁 위에 새카만 개미볶음을 냉면 그릇으로 하나 가득 내놓는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이들에게 요긴한 단백질 섭취원임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건강이 가장 중요한 선교사이기에 이들은 `목숨 걸고` 채소 농사를 지었다. 수단 사람들은 옥수수와 땅콩만 경작할 뿐 채소 농사를 짓지 않는다. 이들에게 농사짓는 것을 가르치는 것도 선교사들의 중요한 임무다. 사제들은 100년을 내다보고 유목사회를 농경사회로 전환시킬 목표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이 밭을 만드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를 거예요."
한만삼 신부가 뒷마당을 보여주며 혀를 내두른다.
두 사제는 나무를 자르고, 우기를 기다려 뿌리를 뽑은 다음, 소똥을 퍼다가 뿌리고 흙을 갈아 밭을 만들었다. 굵은 빗줄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