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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에는 페루 북부 트루히요와 남동부 쿠스코에서 사목하고 있는 최종환, 황주원(의정부교구) 신부의 선교 현장 탐방기를 싣는다.
양 해 룡 신부
(서울대교구 사목국 선교·전례사목부 담당)
▨ 광대한 사막에 꽃을 피우는 최종환 신부
커다란 2층 버스를 타고 동창 신부가 있는 트루히요(Trujillo)에 도착했다. 친구인 최종환 신부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다. 작년 이맘때 선교를 떠난다면서 스페인어를 공부하던 최 신부 모습이 선했다. 신자들과 소통은 잘 하는지, 문화에 적응은 잘 하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모든 게 기우였다. 반갑게 맞이하는 모습을 보고 잘 산다는 것을 직감했다.
최 신부와 함께 1시간 반 가량 페루의 유일한 편도 1차선 고속도로, 판 아메리카를 달렸다. 주변은 온통 갈색 사막이었다. 사막 한가운데를 지나 첫 마을인 빠이항에 도착했다. 이 마을은 고속도로를 끼고 있어 공소도 제법 많다. 이 마을을 지나 물을 대어 사탕수수 농사를 짓는 밭 언저리에 있는 조그마한 항구가 바로 최 신부가 사목하는 쁘에르토 말라브리고(Puerto malabrigo)이다.
최 신부는 저녁미사 때 멀리서 온 나를 소개했다. 그날은 마을 수호자인 카르멘 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Virgen del Carmen) 축제 9일 중 하루였다. 성모님을 성당 왼쪽에 따로 모시고 화려하게 꾸민 게 인상적이었다. 신자들은 아주 큰 스카풀라를 매고 발현하신 성모님께 자신의 소원을 전구했다. 페루인들의 신앙은 성모 신심으로 나타난다. 삼위일체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순종보다는 자신과 더 가까운 성인에게 신심을 드러내는 것을 신앙으로 여긴다.
신자 중에는 조당에 걸린 이들이 많아 영성체하는 신자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최 신부는 안수를 해준다. 안수를 받을 때 신자들 모습이 참으로 진지하다.
토요일 저녁, 공소 미사에 참례했다. 지붕 없는 폐교를 공소로 개조했다. 모 본당에서 온 성가대 봉사자들과 많은 학생들이 참례했다. 자리를 가득 메운 신자들이 경건하게 미사에 참례하는 모습에서 가톨릭교회의 보편성을 느꼈다. 평화의 인사를 할 때는 최 신부가 페루인 사제로 느껴졌다. 격의 없이 안고 악수하는 모습에서 예수님의 향기를 맡았다. 주변 어둠을 비추는 공소 미사는 힘찬 마침성가로 끝났다.
공소를 많이 지어 더 많은 신자들이 신앙생활을 활기차게 하도록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공소를 늘려 여호와의 증인의 발호를 차단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장기적 계획일 뿐, 공소를 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페루교회는 본당 재정 자립도가 낮다. 열악한 상황에도 한 달에 한 번은 애덕주일로 정해 가난한 이웃들에게 신자들이 모은 작은 정성을 나눠준다.
페루에는 사제가 매우 부족하다. 사제 한 명이 사목하는 지리적 공간이 워낙
넓어 신자들을 일일이 돌볼 여력이 없다. 그래서 최 신부의 선교사목은 한국교회와 페루교회 교환 사목의 디딤돌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페루에 온 지 1년 남짓 된 최 신부는 푸른 뽄시아노(페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 꽃처럼 언제나 열정적으로 일하는 희망의 전도사다. 최 신부는 한국교회가 초창기에 받은 보편교회의 선물을 지금 페루에 나눠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