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니?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렴."
서울 용산에 있는 성매매 여성쉼터 막달레나 공동체 지하 1층. 이옥정(콘세크라타) 대표가 방 한쪽 벽을 따라 나란히 세워놓은 영정사진들을 쓰다듬는다.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속 얼굴들이 평화로워 보인다.
"○○이는 당뇨합병증으로 죽었어요. 예수님처럼 33살까지만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더니 정말 33살에 세상을 떠났어요."
이 대표는 사진 속 ○○씨가 몸에서 냄새가 난다며 괴로워하기에 향긋한 냄새가 나라고 오이 마사지를 해주기도 했다. 그는 어느 날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예수님 저 왔어요. 성모님 문 열어주세요"하고 말한 후 3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 친구는 성매매를 그만두기 위해 장사를 하다 교통사고로 죽었어요. 성당은 안 다녔지만 관면혼인을 한 뒤 식사할 때 성호 긋는 걸 흉내내곤 했지요."
사진 한 장 한 장에 그와 함께한 추억이 담겨 있다. 살아 생전에는 이들이 성매매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고, 죽어서는 모두가 꺼리는 장례를 가족처럼 정성껏 치러줬기에 잊을 수도 없고, 잊히지도 않는다.
이씨가 성매매 여성들의 장례를 치르기 시작한 것은 1987년부터다. 낮까지 손님을 받던 △△씨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간 그는 타살 의혹을 떨칠 수 없었다. 조사를 해봐야 하지 않느냐는 그의 말에 경찰은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야지. 당신이 뭘 아느냐?"고 면박을 줬다. 가족들도 사인을 밝히길 꺼리기는 마찬가지였다. 빈소도 없어 시체 안치실에 앉아 기도를 바친 이씨는 바로 화장해 뿌려지는 △△씨를 보고 성매매 여성들의 장례에 나서게 됐다.
"살아서도 천대받으며 힘들게 살았는데, 죽어서까지 그런 모습으로 가는게 안타까웠어요."
누군가 곧 죽을 것 같다는 연락을 받으면 그는 달려가 대세를 주고 죽음을 잘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는 그에게 "부정탄다"며 소금을 뿌리던 이들도 그가 정성을 다해 장례를 치르는 모습을 보고 조금씩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한 달 사이로 세 사람이 연달아 세상을 떠난 어느 여름날, 벽제 화장장에서 일하던 한 직원은 이들을 눈치채고 "아이고, 단골이 되셨네요. 이러면 안 되는데…"하며 운구를 도왔다. 여자들이 운구를 하는 모습은 흔한 풍경이 아니다.
막달레나 공동체 가족들은 매년 설과 추석에 모여 나물을 무치고 전을 부쳐 정성스럽게 제사상을 차린다.
"언니, 내가 죽어도 이렇게 해줄 거야?"
성매매 여성들은 남들이 `하찮게` 여기는 죽음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는 이씨를 보고 "나보다 먼저 죽으면 절대 안 된다"고 말한다. 장례비용과 가족이 없으면 실험용으로 팔려간다는 소문은 이제 사라졌지만 죽어서까지 홀대받는 무명묘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아서다.
이제는 누군가 죽음을 앞두고 있으면 "영혼 구제 좀 해달라"며 전화가 온다. 종교가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장례를 치러준다. 불교 신자의 장례를 치렀을 때에는 절을 많이 하면 좋은 데 간다는 말에 다리가 후들거릴 때까지 절을 하다 온 적도 있다.
친구의 기일이 다가오면 나물이라도 사서 올려달라고 1만 원, 2만 원씩 손에 쥐여주고 가는 이들도 생겨났다.
"살아서든 죽어서든 외롭지 않게 해주는 것이 목적이에요. 성매매 여성이라고 무슨 죄가 그렇게 많겠어요…. 살아서도 사람 취급 못 받고 살았는데 죽을 때만이라도 똑같이 잘 보내야지요."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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