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박해·척박한 땅에서 일궈낸 기적같은 신앙, 숨어 지내던 600여 명의 가쿠레키리시탄, 열악함 속에도 웅장한 쿠로시마성당 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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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2년 마르만 신부에 의해 완공된 쿠로시마성당.
척박한 섬에 사는 가난한 신자들의 손에 의해 지어졌다고 믿기엔 너무도 크고 장엄한 모습이다.
■ 또 하나의 신앙의 섬 쿠로시마
쿠로시마(黑島). 검은 빛의 화강암이 뒤덮여 있어 흑도란 이름을 갖게 된 쿠로시마는 에도막부 시절 히라도한[平戶藩]의 영지였다. 농사를 짓고 살기엔 땅이 너무 척박해 히라도 영주의 방목지로 쓰이던 이 섬엔 소나 말을 관리하던 불교도들만이 항구 근처에 작은 취락을 형성하고 있었다.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척박했던 이 곳에 가쿠레키리시탄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들었다. 불교도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항구가 아닌 섬 뒤편 언저리에 배를 댔다고 한다. 1865년 당시 이 작은 섬에 약 600여 명의 가쿠레키리시탄들이 있었다고 기록돼 있으니, 섬의 척박함 정도와 이주해온 신자수를 생각해 볼 때 당시 박해가 얼마나 혹독했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쾌속선에서 내려 항구를 지나 언덕을 올랐다. 땅 곳곳에 드러나 있는 검은 화강암과, 평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비탈길들. 6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이 작고 척박한 섬에서 어떻게 살아갔을까 생각하며 걷다 고개를 드니 저 멀리 십자가가 보였다. 섬의 가장 높은 곳, 중앙부에 자리잡은 쿠로시마 성당이다. 폐가로 보일 만큼 허름한 단층집들이 성당으로 가는 길옆으로 늘어서 있었다.
이번 여행의 안내자 이리구치 히토시(나가사키 순례센터)씨는 “집이 허름해도 모두 사람이 살고 있다”면서 “그들 모두 교우”라고 귀띔한다.
쿠로시마성당은 화려했다. 이토록 척박한 땅 위에 이처럼 가난한 신자들의 손에 의해 세워졌다고 믿기엔 너무도 크고 웅장한 모습이었다. 그 화려함과 웅장함이 바로 신자들의 신앙심인 듯 보였다. 먹을 것 없이 가난해도 주님의 성전만큼은 크고 화려하게 지으려 했던 옛 신자들의 마음만큼 성당은 장엄했다.
▲ 쿠로시마성당 내부.
높은 천장과 화려한 제단 곳곳에 옛 신자들의 열망이 엿보인다.
현재 570여 명 섬 주민의 85 이상이 신자로서 이 성당에서 공동체를 이뤄 살아가고 있다.
쿠로시마성당은 1898년 쿠로시마 섬을 찾은 마르만 신부가 프랑스에서 조달해온 자금과 신자들의 노동력으로 지어 1902년 완공됐다. 열악한 장비에도 불구하고 쿠로시마 화강암으로 기초를 튼튼히 다졌고, 40만 개의 벽돌을 쌓아 트리포리움(triforium, 교회 입구의 아치와 지붕과의 사이)과 높은 창이 있는 웅장한 교회를 지었다. 교회 내부는 놀라울 정도로 화려했다. 좋은 목재를 구할 돈은 없었지만 성당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신자들이 직접 손으로 그려넣었다는 나뭇결 무늬는 실제보다 더 실제같았다. 쿠로시마 화강암으로 만든 제대 밑 제단에는 아리마 지방에서 구해온 타일을 붙였다. 이 타일은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압송된 조선의 도공들이 전수한 기법이다. 조선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하얀 바탕에 쪽빛 무늬 타일을 보니 일본 교회와 우리나라가 역사 속에 함께 있었음이 더욱 실감났다.
▲ 쿠로시마성당 내부의 나뭇결 무늬.
좋은 목재를 구할 돈이 없던 신자들은 값싼 나무에 손으로 직접 나뭇결 무늬를 그려 넣는 정성을 봉헌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