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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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가쿠레키리스탄의 발자취] 숨어서 피운 신앙의 꽃 (하)

박해 속 이어온 순교영성, 미래에 이어질 신앙유산, 잔인한 박해·원자폭탄 등 아픔 서린 자리, 교회당 다시 세우며 문화유산 보존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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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65년 251년간 잠복해 있던 가쿠레키리시탄들의 존재가 드러났던 ‘신도발견’의 장소인 오오우라천주당.
이곳으로 향하는 거리에는 서양식 건물들이 늘어서 있어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 가쿠레키리시탄의 숨은 뜻

나가사키 순례센터 마츠카씨는 “우리가 흔히 쓰는 ‘가쿠레키리시탄’이란 말에는 세 가지 뜻이 있다”고 말했다.

첫 번째는 과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박해를 피해 자신의 신분을 가장하고 살며 259년간 잠복신앙을 지켜오다 금교령이 해제된 이후 가톨릭으로 돌아온 이들을 이른다.

두 번째는 금교령이 해제된 이후에도 가톨릭으로 돌아오지 않고 자신들만의 방식대로 오라쇼(구전으로 전해온 라틴어 기도문)를 바치고, 세례를 주는 등 현재까지도 예전의 잠복신앙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이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크게 히라도의 마츠우라 영주 통치 아래 신앙을 받아들였던 이들과, 오오무라·아리마 영주 통치 아래 세례를 받았던 이들로 나뉜다. 이키츠키섬 지역에 남아있는 가쿠레키리시탄은 마츠우라, 소토메 지방에 남아있는 이들은 오오무라의 가쿠레키리시탄으로 구분된다.

세 번째는 금교령이 해제된 이후 가톨릭으로도 돌아오지 않고, 잠복 신앙 형태를 유지하지도 않고 있는 가쿠레키리시탄을 뜻한다. ‘가쿠레’란 말 그대로 ‘숨어있는’ 신자들이다. 어린시절 가쿠레키리시탄의 지도자에게 세례를 받아, 세례명은 갖고 있지만 이들은 더 이상 오라쇼를 바치지도, 자녀들이나 가족들에게 세례를 받게 하지도 않는다. 이 경우 가쿠레키리시탄 전통의 대가 끊긴다. 나가사키 순례센터 마츠카씨도 이에 해당한다. 그는 “어릴 적 세례를 받았으나, 자녀도 아내도 세례를 받지 않았다. 심지어 가족들은 내 세례명이 무엇인지, 신앙이란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내가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그에게 ‘신앙심’이 있냐고 묻자 그는 두 손을 가슴에 모으며 “이 안에 하느님이 계시다”고 말했다. 말 그대로 그는 현대의 ‘가쿠레키리시탄’이었다. 아무에게도 내비치지 않는 속내엔 어릴 적 이야기로 들었던 주님에 대한 믿음과 갈망이 있으면서도 그 누구에게도 신앙을 밝히지 않은 채 숨어있는 신앙인. 그는 “너무 오랫동안 간직한 신앙이라 선뜻 밖으로 드러내기가 어려웠다”면서 “하지만 늘 마음속에 믿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 또 다른 아픔을 간직한 나가사키

박해를 피해 259년간 잠복신앙을 이어왔던 일본의 옛 신앙선조들은 금교령이 해제된 이후에도 쉽사리 가톨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언제 또 박해가 닥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히라도에 처음 신앙이 전파된 이후, 1873년 금교령이 해제되기까지 30만 명이 넘는 신자들이 순교하거나 박해받았다. 1597년 히데요시에 의해 처형당한 일본의 첫 순교자 26명의 순교지 니시자카를 비롯해, 마츠쿠라의 박해와 착취에 반대해 봉기를 일으킨 대가로 죽어간 신자 3만 명의 유골이 묻힌 시마바라 지역, 그 시마바라의 난 이후 코오리 마을 동굴에서 발견돼 411명이 처형된 코오리 쿠주레(박해)가 일어난 현재의 마츠바라·다케마츠·후쿠시게 지역 등은 빼 놓을 수 없는 박해의 현장이다. 온천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는 운젠의 유황온천물도 박해의 도구로 사용됐다. 1627~1631년 바오로 우치보리 등 16명의 순교자들은 펄펄 끓는 유황온천물에 몸을 담갔다 빼기를 반복하는 혹독한 고문을 당해야 했다. 손가락을 잘라 수영을 하지 못하게 한 후 겨울 바다에 던져 수장하는 등 잔인한 방법으로 박해는 진행돼 갔다.

원자폭탄이 떨어진 나가사키의 우라카미교회당은 박해의 현장 위에 세운 교회다. 이 마을에선 1790년, 1839년, 1856년, 1867년 네 차례에 걸쳐 혹독한 박해가 일어났다. 후미에(십자가 밟기)로 신자를 가려내 처형했던 박해의 현장에 신자들은 교회당을 세웠다. 하지만 이곳에 또 다른 아픔이 찾아왔다. 1945년 8월 9일 원자폭탄이 떨어져 교회당이 붕괴된 것이다. 당시 8월 15일 성모승천대축일을 준비하고 있던 신자들과 사제들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고, 8600명의 신자들도 운명을 달리했다. 그러나 그들은 원폭으로 붕괴된 그 자리에 또다시 교회당을 세웠다. 박해와 아픔의 자리에 신앙의 꽃을 피운 것이다.


 
▲ 우라카미교회당에 있던 목제 원죄 없으신 성모 마리아상.
원폭으로 다 타버린 교회당 안에서 성모상의 머리 부분만이 기적적으로 남아 발견됐다.
 

 
▲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 때문에 우라카미천주당은 붕괴됐다.
당시 우라카미천주당을 장식하고 있던 종탑이 성당 근처에 떨어져 있다. 나가사키 정부는 이 자리를 있는 그대로 보존해 관광지로 개발했다.
 
가톨릭신문  2010-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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