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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빈민촌 나보타스를 찾아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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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리도 없는 낡은 창 너머로 세 살배기 아이의 무표정한 시선이 보인다.
나보타스 빈민촌은 아이의 흐르는 콧물을 닦아주고 손 한번 잡아줄 후원자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필리핀 나보타스 빈민촌 골목은 두 사람이 나란히 걸어가기 힘들 정도로 폭이 좁다. 좁은 땅에 많은 집을 지어야 하기에 옆집에서 뀌는 방귀소리가 들릴 정도로 서로 붙어 있다. 하지만, 게딱지같은 집들이 다닥다닥 모여 있는 가장 큰 이유는 1년에 10여 차례 이곳을 강타하는 태풍을 견디기 위해서다. 엉성하게 나무로 지어진 집들은 서로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시련을 이겨낼 수 없다.
 
 ▨`기쁨과 희망`의 새로운 미래
 
 면 티셔츠를 입고 슬리퍼를 신은 김홍락 신부가 빈민촌 골목에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신자들이 그를 반긴다. 신자들이 인사 뒤 김 신부에게 하는 말은 언제나처럼 하소연이다. 자식 고민 털어놓고 남편 흉보는 모습이 꼭 친정 엄마에게 얘기하는 딸 같다.
 

 
▲ 빈민촌 골목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일주일에 세 번 빈민촌 사목방문에 나서는 김홍락 신부. 조금은 거창하게 들릴 수 있지만 가벼운 옷차림으로 골목 한쪽에 걸터앉아 사람들 고민을 들어주고 도울 수 있는 것은 돕는 게 김 신부의 사목방문이다.
 목자로 신자들을 만나고 각종 행정업무를 처리하며 빈민촌에서 빈민들과 살아온 지 벌써 3년째, 빈민촌의 한해가 또 시작됐다. `신부님이 시장에 출마하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빈민촌에서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김 신부가 요즘 더 바빠졌다.
 빈민촌 아이들 교육과 장학금 지원 사업이 조금씩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기쁨과 희망 재단 운영은 늘 벅차기만 하다. 한국에서 후원자들이 정성을 모으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끝이 안 보인다. 그래서 김 신부가 생각한 것이 고정적 수익을 만들 수 있는 출판사업이다.
 김 신부는 "조만간 출판사를 세워 교회책자를 출간할 계획"이라며 "우선 한국의 `매일미사` 같은 책을 만들어 신자들에게 보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옆에서 보면 건강이 걱정될 정도로 부실하게 먹고 쉴 새 없이 일하는 김 신부가 또 일을 벌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필리핀인들의 손으로
  
 후원금만으로 운영되는 재단 재정은 환율이 오르면 반 토막 나기 일쑤다. 김 신부는 돈을 아끼려고 하루 한 끼, 그것도 빈민들에게 조금씩 얻어먹고 살기도 했다. 3년 전 이곳에 발을 디뎠을 때 90㎏에 육박했던 체중은 70㎏으로 줄었다.
 `누가 알아준다고 저렇게 살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김 신부가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은 `(사)기쁨과 희망`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해서다. (사)기쁨과 희망 후원회(회장 이재헌) 회원 400여 명이 김 신부와의 개인적 인맥으로 후원하는 상황에서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재단 존속이 어렵다. "언젠가는 필리핀인 스스로 이곳 법인을 운영해야 한다"고 말하는 김 신부 표정이 어둡다.
 

 
▲ 오물로 뒤덮인 강에서 목욕하고 신나게 노는 아이들.
깊이를 알 수 없는 강물은 어둠보다 진하다.

 빈민촌은 큰 위기에 직면해 있다. 재개발이 시작되면 언제 이곳에서 쫓겨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재개발은 이들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현지 빈민운동 매니저 마리아 에콧(57)씨는 "우리는 철거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세울 방법이 없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도 김 신부는 빈민들을 위한 마을을 만드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아무에게도 쫓겨날 걱정 없이 서로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는 교우들이 사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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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1-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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