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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쉼터] 부산교구 111개 성당 순례한 정정일씨

“두 켤레 신발 다 닳도록 걷고 또 걸었습니다”, 삶의 고통까지 기쁨으로 승화시킨 거룩한 여정, 4개월간 도보·대중교통만으로 111개 성당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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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빗속에서 우산을 쓰고 지팡이에 의지한 채 지도를 펼쳐 길을 찾고 있는 정정일씨.
 

■ 주님을 찾아 떠나는 여행

“순례를 떠나기 전에 느껴지는 설렘은 쉽게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집을 찾아 떠나는 기쁨. 그리고 새롭게 만나게 될 공동체는 얼마나 멋진 모습을 하고 있을지…. 제각각인 성당의 모습만큼이나 많은 수의 공동체들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습니다.”

부산교구 봉래본당 정정일(베네딕토·67)씨는 2010년 8월 18일 구포성당을 시작으로 같은 해 12월 18일 기장성당까지 교구 내 111개 성당을 순례했다.

도대체 왜 교구의 모든 성당을 순례하기로 마음을 먹었을까. 언뜻 보기에는 기행(奇行)처럼 여겨지던 그의 행보에는 가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 그리고 남다른 신앙이 숨어 있었다.

■ 아버지의 진정한 유산

“아버님은 제가 세례받기를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다른 것들은 못해도 성당만큼은 꼭 빼먹지 않고 나가도록 당부하셨어요. 하지만 저는 사춘기를 방황하며 보냈고 결국 세례식날 친구들과 어울린다고 성당에 나가지 않았답니다.”

정정일씨는 비록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지만 표정 속에는 ‘하늘나라에는 나 말고 진짜 아버지가 계시다’고 힘주어 말씀하시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났다.

1999년 9월 5일. 그는 결국 수십 년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아버지가 물려주려고 했던 진정한 유산을 이어받았다.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세례를 받고 무언가 가슴에 차오르는 응어리를 풀어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절망에 빠진 저를 살게 해주신 주님께 봉헌하고자 성당 순례를 꿈꾸게 됐습니다.”

■ 시련의 아픔

그러나 그의 첫 번째 시도는 21개 성당에서 멈추고야 말았다.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자식이 많이 아팠습니다.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자식을 위해 병원비로 가산을 모두 탕진하고 나니 살길이 막막해졌어요. 그때는 너무도 힘겨운 마음에 죽으러 간다는 심정으로 자화상을 하나 남기고는 밀양으로 이사를 떠났어요.”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주님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다고 고백하는 정정일씨는 결국 힘들었던 과거를 견디어 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성당 순례의 길에 나서게 된다.

■ 축복의 발걸음

구포, 중앙, 금곡, 만덕, 남산, 금정, 사상…. 정정일씨가 순례를 다닌 성당들이다. 한 번의 실패는 꼭 달성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바뀌었고, 이번 순례를 앞두고 묵주기도를 1000단이나 바치며 마음을 모았다.

“설렘과 기다림으로 잠도 잘 오지 않았습니다. 성당을 하나씩 하나씩 방문하면 마음도 기쁨으로 채워져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순례를 떠나는 그의 행색은 초라했지만 지팡이와 작은 가방에 각종 지도, 묵주, 신자임을 밝히는 이름표 그리고 물통을 챙기는 모습을 생각하면 사뭇 비장하기까지 하다.

대중교통과 도보로 김해와 양산은 물론 울산과 밀양까지 순례를 다니느라 4개월 만에 두 켤레의 신발이 닳았다.

■ 또 다른 순례를 떠나며

“각 성당마다 드러나는 아름다운 분위기와 신자들의 표정 속에서 살아 숨쉬는 공동체를 만나면 저절로 힘이 납니다.”

정정일씨는 성당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성모상을 찾고 초를 봉헌한다. 그리고 성모찬송과 주모경을 바치고 성전에 들어가 묵주기도를 바친다. 우연히 사제와 마주치게 되면 축복을 받기도 한다.

“신부님이 축복을 내려주시고, 힘내라고 해주시는 말씀에 큰 위안과 기쁨을 얻습니다.”

척추관절 퇴행으로 걷기조차 힘들지만 지팡이에 의지해 주님의 집을 찾는 그의 마음은 절박했다.

녹내장으로 한쪽 눈을 잃고 다른 한쪽도 치료를 받고 있어 온전치 못하지만 이런 육체적인 어려움도 그의 순례를 막을 수 없었다.

“마지막 성당에 도착하던 그때는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해냈다는 기쁨과 안도감 그리고 아버지께서 남겨주신 신앙의 유산을 제가 온전히 받아들였다는 생각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돌아가신 부모님과 가족을 위해 바친 기도, 그리고 정정일씨가 펼친 4개월의 순례는 모두 끝이 났다. 하지만 참 신앙인으로 주님께 이르는 인생의 순례가 남았다.

더욱 절실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고 인생을 살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인자로운 눈빛에서 온화한 기쁨이 느껴졌다.


 
▲ 집에서 기도를 바치고 있는 정정일씨.
성당 순례 때에도 항상 집에서 기도를 바치고 출발했다.
 

 
이도경 기자 (revolej@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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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1-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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