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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일본은 여전히 지리적으로 가까우나 감정적으로는 먼 나라이다. 개인적으로 일본 여행이 처음인 것도 그런 심리적 거리감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나가사키 성지순례를 통해 일본 가톨릭교회의 많은 순교자들과 그들이 남긴 유산들이 한국교회 신앙 선조들의 그것과 흡사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됐다.
서영호 기자 amotu@pbc.co.kr
▨ 성 야고보 도모나가 신부와 오무라 호코바루
일본 후쿠오카 국제공항에 도착, 첫 순례지로 나가사키현 오무라(大村) 지역에서 가장 많은 순교자를 냈다는 호코바루 순교지를 찾아가기에 앞서 인근 무라마치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무라마치성당은 1987년 시성된 성 야고보 도모나가(朝長) 신부를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있다. 오무라 출신으로 1633년 51살 나이로 순교한 야고보 도모나가 성인은 구덩이에 거꾸로 매달아 고문하는 `아나즈리`라는 형벌을 50시간이나 받으면서도 하느님을 버리지 않고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아나즈리는 일본인들 스스로도 가장 잔인하다고 하는 처형 방법이다. 내장기관들이 아래로 처지지 않도록 몸을 포대로 둘둘 말아 묶고 거꾸로 매달았다. 또 머리에 피가 몰리지 않고 흘러 내리도록 귀 옆에 구멍을 뚫었다. 배교하지 않는 천주교 신자들이 빨리 죽지 않고 최대한 오래 고통을 느끼게 하려는 것이다. 당시 `후미에`(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나 성모 마리아상을 밟고 지나가게 하는 것)를 거부한 키리시탄(切支丹, 그리스도인)에게는 아나즈리 형벌이 가해졌다.
설명을 들은 순례단은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새삼 느꼈다"고 입을 모았다. 그냥 설명을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불편할 정도니 직접 당한 순교자들 고통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해안도시 오무라는 16세기 이후 일본과 포르투갈을 잇는 무역항으로 일본 가톨릭 중심지였다. 오무라 지방 영주 스미타다(純忠, 바르톨로메오)는 1563년 세례를 받은 일본 최초의 신자 다이묘(영주)로 영내 키리시탄이 6만 명이 넘을 정도로 가톨릭을 장려했다.
그러나 그의 뒤를 이은 스미요리는 1617년부터 박해를 시작해 체포한 키리시탄을 호코바루에서 처형했다. 호코바루 순교지에는 순교자 현양비와 조선인 순교복자 13위 현양비가 세워져 역사적 순교 현장이었음을 희미하게 말해주고 있다.
▲ 순교자들의 피로 물든 호코바루 순교지에서 순례자들이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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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안내를 맡은 황일휘(요한 사도)씨는 "머리와 몸을 함께 묻으면 키리시탄이 부활할 것을 두려워해 멀리 떨어진 곳에 따로 묻었다"고 설명했다. 헛웃음밖에 안 나왔다. 가톨릭 신앙을 부정하면서도 부활신앙을 믿고 그것을 두려워했다니 너무 아이러니하다. 그만큼 복음은 강력했고 키리시탄들에게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강한 믿음을 심어줬다. 죽음 앞에서도 의연하게 맞섰던 이들의 용기는 신앙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순교성지는 그나마 많은 신자들이 찾아와 기도하며 순교자들 넋이라도 기리는데 이곳은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이 적막하다. 바로 옆 공터에서 서너 명의 인부들이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일본인에게도 그리 알려져 있지 않은 곳인데, 한국 순례자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고 지자체에서 주차장 공사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 히라도 성당
버스는 히라도로 향했다. 큐슈 북서쪽에 있는 히라도 섬과 동부 내륙이 히라도 대교로 묶여있는 도시다. 일본 국가지정 중요문화재인 타비라성당과 야이자 사적공원 순교비 등 탄압 속에서도 신앙의 불을 보존한 키리시탄들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신앙의 못자리`로 불리는 히라도는 아름다운 섬이다. 1550년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가 일본에 와서 처음 복음의 씨앗을 뿌린 곳이다. 일본 첫 사제가 배출된 곳이기도 하다. 일본 가톨릭교회의 시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섬에서 순교했다.
▲ 1931년 프랑스 선교사들이 건립한 고딕식 히라도 성당.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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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도 항구로 들어서면 고딕식 히라도성당이 눈에 띈다. 1931년 프랑스 선교사들이 건립한 성당으로 1971년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 기념비를 건립하면서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기념성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 지역에서는 성당 역사보다는 성당과 절이 함께 보이는 풍경을 관광 상징물로 내세우고 있다. 히라도 항구에서 성당으로 올라가다보면 두 개의 절이 성당 첨탑과 어우러져 한눈에 들어온다. 성당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바다 풍경도 아름답다.
"주님, 사람들이 이렇게 슬픈데 바다가 너무 파랗습니다."
엔도 슈샤쿠의 소설 「침묵」에 나오는 구절이 절로 떠오른다.
가톨릭평화신문 2011-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