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유수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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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생활의 쇄신 적응에 관한 교령」(이하 「수도생활 교령」)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먼저 수도생활의 역사부터 간략하게 소개한다.
우리 교회에 수도회가 생긴 것은 4세기 경이다. 그 이전에도 동정녀와 금욕자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외견상 일반 사람과 같은 생활을 했다. 그러나 한적한 사막이나 광야로 나가 은수생활을 하는 이들이 313년 그리스도교의 자유가 주어진 후에도 계속되자 이 때부터 세속을 떠나 특수한 생활을 하는 것을 수도생활로 특징지었다.
은수자 중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사막의 성 안토니오(251?~356)는 은수 생활의 창시자이자 모든 수도자들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는 하루 한 끼만 아주 검소하게 먹고 잠도 적게 잤다. 남루한 옷차림에 한가함을 피하고 애긍을 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노동을 했지만 주요 일과는 주로 시편을 외우고 묵상기도를 하는 일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독수자들이 가까이 모여살기 시작했다. 특히 독수 생활에는 사막의 무서운 적막, 짐승과 강도들의 습격, 음식 결핍, 내적 건조, 상상적 공격 등 많은 위험이 뒤따르자 성 파코미오는 여러 수도자들이 한 곳에 모여 생활하게 하는 수도회를 창설했다.
성 바실리오는 공동체로 함께 사는 회(會) 수도 제도의 필요성을 신학적으로 이렇게 논증했다. "수도원은 그리스도 교회의 작은 모형이며 수도 단체는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생활하는 살아있는 그리스도의 신비체다."
서방 수도생활이 정착하고 발전하는 데 기여한 이는 성 베네딕토다. 그는 정주(定住, stability)라는 특별한 생활양식을 제정했다. 이 원칙에 따라 수도자는 한 번 들어온 수도원에서 서원하면 다시는 다른 수도원으로 옮겨갈 수 없게 됐고, 각 수도원은 정주성으로 인해 자립적 공동체를 이뤘다.
사제들이 수도자들처럼 공동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프리카 히포의 주교인 성 아우구스티노는 수도자들처럼 서원을 하지 않으면서 다른 성직자들과 함께 수도생활과 비슷한 공동생활을 했다. 그는 재속 사제들의 공동생활을 위한 회칙을 만들었는데 후대에 그의 회칙을 따르는 남녀 수도회들이 생겨났다.
13세기 성 도미니코와 같은 시대 사람인 성 프란치스코가 세운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는 종전 수도생활과 달리 세상에 나가 사도직 생활을 하는 양식을 택했다. 또 엘리아 예언자의 극기 생활을 본받는 수도 단체들도 생겨났지만 여러가지 불화와 규율의 해이로 어려움을 겪었다. 가르멜회를 개혁한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은 근대의 가장 유명한 신비가로 수도회 창설자보다 높이 평가받고 있다.
16세기에 설립된 예수회는 종전 수도회보다 더 `집중적 조직체`를 갖추었다. 특히 완전한 순명과 철저한 학문 연마로 유명한 예수회는 또 종전 수도회와 달리 성무일도를 공동으로 바치지 않는다.
이후 19세기에 들어 많은 수도회들이 병자 간호, 청소년 교육 등 일정한 목적을 위해 세워졌다. 우리 시대에 와서는 세속 사람들과 같은 생활을 하는 수도회가 생겨났는데, 이는 봉쇄구역과 수도복이 없는 재속수도회다.
이처럼 시대에 따라 수도생활의 새로운 양식이 생겨났고 설립됐다가 없어진 수도회도 있으나 수도생활의 갖가지 양식은 오늘날까지 지속된다. 수도회는 교회 당국이 의도적으로 세운 것이 아니다. 교회 안에서 자유로이 활동하시는 성령의 소산으로 특은(Charisma)에 속한다. 교회 역사를 보면 성인품에 오른 이들의 대다수는 복음적 권고를 지킨 수도자들이다.
수도자준비위원회가 작성한 초안은 애초 110쪽 분량이었으나 교황청 의사조정위원회 요청에 따라 34쪽으로 축소됐고 다시 4쪽으로 축소됐다가 제3회기 때 교부들의 강력한 요청으로 25개 항목을 담은 10쪽 분량으로 늘어났다.
또 의안 표제도 `헌장`에서 `제안`으로 내려갔다가 마지막에 헌장 아래 단계인 `교령`으로 정해졌다. 「교회헌장」 의안을 다룰 때도 성직자와 평신도가 한 장(章)씩 배정받은 것과 달리 수도자는 제외될 뻔 하다가 가까스로 한 장(章)을 배정(제6장) 받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1965년 10월 28일 반포된 이 교령은 이에 앞서 64년 11월 21일 반포된 「교회헌장」 제6장(수도자)의 연장이며 그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서로 동일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교령은 수도생활의 두 가지 측면에 대해 언급한다. 수도생활의 불변적 요소인 수도생활의 목적, 기초, 가치 등 본질적 측면과 수도생활의 외적 요소인 생활양식, 복장 등 시대적으로 변할 수 있는 측면이다. 전자는 성경과 신학적 기초를 바탕으로 수도생활을 그 원천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수도생활 쇄신과 관계되는 내용이다. 후자는 시대와 상황 변천에 생활양식을 조화시키는 수도생활의 현대적 적응과 관계되는 것이다.
또 이 교령은 수도생활의 본질과 가치를 하느님 중심성, 교회론적 가치, 구속적(救贖的) 가치, 종말론적 가치 등 4가지 차원에서 말한다.
* 일반 원칙과 실천 기준, 쇄신 주체(제2~4조)
교령은 쇄신의 최고 원칙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과 수도회 초창기 영감, 즉 창립자 정신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최고 원칙을 강조해도 수도회 회원 각자가 자신의 영적 쇄신에 힘쓰지 않으면 현세의 요구에 대한 최선의 적응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게 되고 나아가 성소의 위기까지 겪게 될 것이다.
교령은 또 적응의 긴급함과 특히 선교지에서 적응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적응의 대상은 먼저 생활과 기도, 활동양식 세 가지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까지는 세상 변천을 무시한 초(超) 세속주의를 견지했던 수도회들이 현세에 관심 갖고 현세를 이해하고 긍정하는 입장에 서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현명함과 신중함이 요구된다.
쇄신 적응은 교회 지도 아래 이뤄져야 하는데, 수도회 쇄신과 적응을 위해 총회 및 각 관구 회의를 중요시했다. 또 수도회 쇄신과 적응을 실제로 추진하는 이들은 장상들이기에 공의회 이후 장상들의 책임도 강화됐다.
* 영성생활(제5~6조)
수도생활은 하느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으로 세상을 버리고 온전히 하느님을 사랑해 하느님을 섬기는 삶이다. 세상을 버리는 것은 세상에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복음적 권고를 사는 것으로, 일반 사람들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남녀간 애정, 재물 소유 등과 같은 것을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것이다. 따라서 "수도자는 자신의 서원에 충실하여 모든 것을 그리스도를 위해 버리고 오로지 필요한 단 한 분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리스도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 일에 열중해야 한다."
수도자는 무엇보다 영적생활이 중요하다. 영적생활을 증진하려면 기도생활, 성경말씀 읽고 묵상하기, 거룩한 전례, 특히 성찬전례 거행에 충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