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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본당에서는 미사에 온 신자들에게 뭔가 먹을 것을 주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런데 군대 성당에 와서 사목을 하다 보니 이상하게 뭔가를 주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평일에 근무서랴 훈련받으랴 고생하고 왔으리라 생각하니 맘이 저며 와서 그럴까.
마치 군에 보낸 아들이 휴가를 오면 맛있는 것을 해먹이고 싶은 엄마 마음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미사가 끝난 뒤에 병사들에게 커피를 주자고 성모회에 부탁을 했다. 하지만 커피를 300잔 가량을 준비한다는 것이 쉬우면서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착하디 착한(?) 우리 자매님들께서 기꺼이 준비를 해 주시겠다고 하셨다. 여름에는 냉커피로 몸과 마음을 시원하게, 겨울철에는 따뜻한 커피로 몸과 마음을 녹여주었다.
그런데 일회용 컵을 사용하다 보니 재정적 문제가 생겼다. 돈이 너무 많이 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큰 맘 먹고 아주 좋은 컵으로 300개를 장만했다. 컵을 사고 나니 이제는 매번 컵 씻는 일이 장난이 아니었다. 열악한 주방에서 자매님들이 정말 수고가 많았다.
컵을 구입한 지 한 달쯤 지나 군종병이 이상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신부님, 죄송한데 컵이 매주 조금씩 없어지더니 지금은 많이 없어졌습니다."
깨지는 컵이 아닌데도 컵 숫자가 줄어든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려서 "왜 그런데?"하고 다시 물었더니, 병사들이 커피를 마시고 컵을 가지고 간다는 것이었다. 때마침 겨울이라 야전상의(병사들 겨울용 외투)에 숨겨서 가져가 생활관(내무반)에서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괘씸했지만 많은 숫자가 한 번에 떠나기에 일일이 검사를 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공지사항 시간에 이렇게 말을 했다. "컵이 없어져도 다시는 컵을 사지 않을 것이고, 있는 컵 숫자만큼만 커피를 끓일 것입니다. 컵이 다 없어지면 여러분 후배들은 다시는 커피를 못 마시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알아서 하세요!"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나 군종병이 내게 하는 말. "신부님, 컵이 원래 숫자보다 더 많아졌습니다"하는 것이 아닌가. 내 말뜻을 알아주었던 그 많은 병사들에게 참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지금 같으면 생활관에 필요한 만큼이라도 컵을 사줬을 텐데…. 지금은 그 젊은이들이 무엇을 할지 궁금하다. 아마 장성해 귀여운 아이들 아빠가 돼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