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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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20돌 기획] '격동의 현대사, 교회와 세상'[1] 대한민국 승인을 도와주십시오

장면 박사 파리 유엔총회에 수석 대표로 급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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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대한민국 건국 60돌이 되는 해이다. 해방의 감격과 혼란, 민족 분단, 6ㆍ25 전쟁, 폐허에서 이뤄낸 산업화와 민주화…. 실로 격동의 세월이었다.
 
지난 60년이 격동의 세월이기는 한국 가톨릭도 마찬가지였다. 해방 당시 신자 수가 전체 인구의 0.7에 불과했던 한국교회는 시대의 격랑을 헤치며 숨가쁘게 달려왔다. 특히 전후 구호ㆍ의료ㆍ교육사업, 민주화운동 등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면서 복음화율 10대 진입을 눈앞에 둔 주류 종교로 우뚝 섰다.

 평화신문은 창간 20돌 특별기획으로 한국 가톨릭 현대사에서 교회와 사회에 큰 획을 그은 20가지 사건(주제)을 선정, `격동의 현대사, 교회와 세상`을 연재한다. 살아있는 현대 교회사를 펼쳐 보일 이 기획은 우리의 과거를 성찰하고, 이를 기초로 21세기 나아갈 길을 제시하리라 기대한다.


   1948년 12월 12일 새벽 3시, 프랑스 파리.

 제3차 유엔총회 한국대표단으로 3개월째 파리에 머물고 있는 장면(요한) 박사와 시인 모윤숙씨는 보슬비 내리는 적막한 거리를 가로 질러 성요셉 성당으로 들어갔다.

 장 박사는 무릎을 꿇고 기도를 바치기 시작했다. 난생 처음 성당에 간 모씨는 기도에 몰입해 좀체 일어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 그를 힐끔 힐끔 쳐다보기만 했다. 장 박사는 거의 1시간 만에 일어섰다.

 "미스 모, 이 근처에 아베마리아 성당이 있는데 거기 가서 새벽미사에 참례합시다"

 "또 기도를? 저는 무릎이 아파서 도저히 안 되겠어요."

 "오늘처럼 중요한 날에 그걸 못 참아요. 허허."

 수석대표인 장 박사는 새벽미사에 참례하고 호텔로 돌아와 대표단에게 비장한 어조로 말했다.

 "오늘 최후의 승리를 확보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운명이 우리 양 어깨에 얹혀 있습니다. 각국 대표들에게 찾아가서 마지막으로 호소합시다."
 
 # 47 대 6의 승리
 오후 3시 유엔총회장은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하는 문제로 소란스러웠다. 전날 밤에도 소련대표 비신스키와 미국대표 덜레스(미 국무장관)가 이 문제를 놓고 격렬하게 싸웠다는 소문이 퍼졌다.


 
▲ 장면 박사(가운데)가 유엔총회장 로비에서 각국 대표들에게 대한민국 정부 승인을 호소하고 있다.
 
 승인을 반대하는 공산진영 대표 비신스키는 단상에 올라갈 때마다 입에 담지 못할 험담으로 미국과 한국을 비난했다. 대한민국의 국제적 승인은 한반도에 국한된 문제만이 아니었다. 자본주의진영과 공산진영간의 한 치 양보할 수 없는 대결이었다.

 국제사회 승인은 장 박사 표현대로 대한민국의 운명이 걸린 문제였다. 남한은 자유 총선거를 실시해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을 국내외에 선포했다. 북한도 9월 3일 UN 임시위원단의 어떤 감시도 받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단독정부 수립을 선포했다.

 그러나 국제적 승인을 받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었다. 고립에서 벗어나려면 승인을 받는 게 급선무였다. 남한 정부가 장 박사를 수석으로 하는 대표단을 파리로 급파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대표단은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출범한 지 1~2개월 밖에 안된 신생국가의 초년생 대표들이 국제무대에서 노련한 외교관들을 상대로 지지표를 얻어내는 일은 무모한 일이었다. 더구나 각국 대표들은 자국의 이해관계가 얽힌 의제가 끝나고, 성탄절도 가까워오자 귀국을 서두르는 분위기였다.

 장 박사는 그런 그들을 발이 닳도록 찾아다니며 설득했다. 심야회의가 열릴 때는 새벽 2시까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피곤하다며 뿌리치는 대표들을 붙잡고 설득했다.

 마침내 투표함이 열렸다. `찬성 47표 반대 6표`. 이로써 유엔은 대한민국의 적법성을 선언하고, 대한민국 권위가 전 한반도에 미친다(결의안 제195호)는 점을 승인했다. 이 표결은 대한민국 외교의 승리이자 신생 공산국가들에 대한 자본주의국가들의 승리였다.

 # 교황청과 메리놀회가 나서다
 이날의 승리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 교황청의 전폭적 지지와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장면 박사라는 걸출한 인물의 가톨릭 네트워크가 그것이다.

 교황 비오 12세는 일본에 체류 중인 전 평양교구장 번(Byrne, J. Patrick) 주교를 1947년 교황사절로 한국에 파견했다. 교황청의 사절 파견은 국제공법과 외교관례상 한국이라는 국가의 존재를 외교적으로 승인한다는 의미가 있다.

 일본에서 맥아더 장군의 민정 고문으로 일했던 번 주교는 주한 미 사령관 하지(Hodge) 장군은 물론 한국 가톨릭의 대표성을 띤 장 박사와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했다. 장 박사와 번 주교는 1920년 미국 펜실바니아 메리놀학교에서 학생과 교장으로 만났던 사이다. 번 주교는 1922년 평양교구 창설 준비 책임자로 한국에 와서도 장 박사와 함께 일한 터라 두 사람은 눈빛만 봐도 상대의 마음을 아는 사이였다.

 번 주교는 외교관으로서 정부 수립과 국제적 승인을 위한 수완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는 UN 임시위원단 감시하에 선거를 치르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미소간 협상을 통해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려는 임시위원단 계획을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번 주교는 메리놀본부를 통해 미국 외교가에 우호적 여론을 조성했다. 또 미국 스펠만 추기경이 주최하는 오찬에 이승만(당시 독립촉성국민회의 의장)을 참석시켜 그가 미 정계에 발을 넓힐 수 있도록 했다.

 유엔 3차 총회에서는 바티칸의 외교력이 빛났다. 교황 비오 12세는 바티칸 국무장관 몬티니 대주교와 프랑스 주재 교황대사에게 한국대표단에 대한 전폭적 지원을 명령했다. 이들은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국가들의 고위 성직자와 외교관들에게 장 박사를 소개시켜줬다.



 


가톨릭평화신문  2008-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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