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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 근무를 마치고 서울 근교 행정부대로 자리를 옮겼는데 부대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라 성당도 두 군데를 맡아야 했다. 그런데 가자마자 3개월 안에 교관이 되는 시험을 봐야 했다. 그것을 `연구강의`라고 한다.
강의과목 강의록을 직접 만들고, 책임자들 앞에서 강의록도 보지 않고 한 시간 짜리 강의를 해야 했다. 교관으로서의 태도와 말투, 칠판에 글씨 쓰는 자세, 지시봉과 슬라이드 사용법 등도 평가 대상이었다. 하여튼 본당현황 파악은 연구강의를 끝낸 뒤에나 할 수 있었다.
그 본당에는 수녀님이 한 분 계셨다. 수녀님들은 전교수녀로 본당에 나와 있어도 공동체 생활을 해야 하기에 혼자 활동하는 그 수녀님은 같은 수녀회 소속 수녀님들이 계신 인근 성당에서 출퇴근을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그래도 열심히 활동을 해주셨는데, 어째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 나는 눈치 하나는 빠르다.
수녀원에서 이 성당으로, 또 이 성당에서 저 성당으로 오가는 대중교통편이 없었던 것이다. 매번 택시 타기도 그렇고, 몇 안 되는 신자 자매님들에게 차편을 부탁해 얻어타고 다녔다. 하지만 태워줄 사람이 없으면 한 시간 거리를 걸어가야 한다고 했다.
물론 운동 삼아 그 정도 거리는 걷는 게 좋다고 하지만 무더운 날이나 추운 겨울에는 어쩌랴. 아무래도 예의가 아니었다. 그래서 사목회의를 하면서 수녀님 승용차를 장만하자고 제안했다. 의논 끝에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수녀님께서 구입을 보류해 달라는 것이 아닌가.
역시 눈치 빠른 나는 "수녀님, 혹시 철수하시는 건가요?"하고 물으니 당황해 하시는 것이었다. 수녀원에서 거의 철수가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본당신부 입장에서는 전교수녀가 꼭 필요한 본당이라 생각해 강력하게 안 된다고 말했다.
며칠 후 총원장 수녀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총원장 수녀님은 "승용차를 산 뒤에 수녀를 철수시키면 그 차를 어떻게 할 거냐?"고 물으셨다. 그래서 "하루라도 타게 해드려야죠. 수녀님 떠나시면 중고시장에 내다 팔 계획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말에 감동하신 총원장 수녀님과 본당 수녀님. 고맙게도 철수보류 결정을 해주셨다. 그리고 부리나케 모금운동을 벌여 승용차를 구입했는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차량 대금을 지불하고 나니 딱 만 원이 남는 게 아닌가. "하느님 참말로 감사합니데이"라고 외쳤다.
수녀님께서는 승용차로 마음껏 열성을 다해 활동하시다가 군종교구를 떠나셨다. 주님 축복 많이 받는 수도자 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