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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멘토 사제] 이대길 신부

그 겸손 앞에 저절로 고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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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 멘토 신부님은 어느 한 특정 신부님이 아니라 모든 신부님이다. 왜냐하면 모든 신부님은 나름대로 훌륭한 면을 지니셨고, 그 하나하나가 가르침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ㆍ후배, 동료 신부님들 모습 중, 내가 평생 거울로 삼아야 할 한 가지를 적는다.
 나는 우리 교구 한 본당의 초대신부였고, 글의 주인공은 그 본당의 세 번째 신부님이셨다. 신부님은 어느 날 나를 저녁식사에 초대하셨다. 오랫동안 본당신부로 계시며, 후배 신부인 내가 지은 성당이 신자분들의 편리를 고려했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것이 이유였다.
 물론 새 성당을 짓는 수고도 내가 한 것이 아니고 그 본당 신자 분들의 수고였고, 또 성당 구조에 대한 칭찬도 사실은 아니다. 단지 후배가 한 일을 늘 예쁘게 보시는 신부님 성품에서 나오는 것이다.
 식당은 성당 옆 골목에 있는 본당 교우 분이 운영하시는 곳이라 나도 주인 내외분을 잘 알고 있었다. 식사 중 주인 자매님이 인사차 들어오셨고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았는데 이 신부님은 그 자매님에게 깍듯한 존댓말을 하셨다. 그런데 신부님이 그 자매님 앞에 무릎을 꿇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마치 이 신부님이 그 자매님에게 무엇인가 크게 잘못을 해 정중히 용서를 비는 투였다.
 한 노사제가 십삼년 아래 교우에게 꿇어 앉아 깎으려야 더 깎을 수 없는 깍듯한 언어를 쓰는 것은 어색한 일인가? 이것은 지나친 일인가?
 사도 바오로 말씀대로, 예수님은 하느님이시면도 비천한 사람이 되어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사람을 섬기셨는데, 자신이 13살이 많다고 말을 쉽게 하지 않는 태도는 잘못인가? 아니다. 그래야 한다.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을 내가 하지 못했을 뿐이다. 후배 신부로서 가슴이 뿌듯했다. 이 신부님이 너무 멋있다.
 신부님은 누구에게나 말투가 깍듯하시다. 새까만 후배인 내게도 그러시다. 이 분이 반말을 하시는 것을 한번 들었다. 처음 본당에 부임하셨을 때 성당 내부를 둘러 보시다 교리실 문을 열었는데 초등부 3학년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신부님은 꼬마들 이름을 묻고 말씀하셨다. "반갑다. 나는 대길인데 우리 친하게 지내자."
 이 신부님은 우리 교구 이대길 시메온 신부님이시다. 1940년에 태어나셔서 1966년 12월 21일 사제로 서품되셨고 2007년 9월 4일 욱수성당에서 은퇴하셨다. 지금은 경북 칠곡의 아주 조그만 수녀원에서 노수녀님 네 분과 몇몇 장애인들과 미사를 드리고 책을 읽으며 지내신다.
 "사제로서 겸손 그 자체이신 신부님, 고맙습니다. 제게 성당을 잘 지었다고 칭찬해주시며 저녁을 사주셔서 고마운 게 아니라 제가 양반이고 싶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
 주위 선배 신부님과 후배 신부님에게 많은 것을 배우지만, 이 가르침은 내가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할 가르침 중 하나다. 덧붙이면 이대길 신부님 성품은 충실한 기도생활에서 온다는 것으로 짐작된다. 가끔 신부님을 뵈러 가면 사제관에 잘 안 계신다. 틈만 나면 성당에 앉아 계시기 때문이다.


 
▲ 노광수 신부(대구가톨릭대 신학대학 교수)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09-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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