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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받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 신앙인은 기도만 해야 하는 걸까.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이용훈 주교는 "교회가 사회문제에 개입하는 것에 대해 경계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신앙인이 잘못된 정치와 인간 존엄성이 유린당하는 상황을 못 본 체한다면 옳은 일이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주교는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와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9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개최한 제2회 사회교리주간 세미나에서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라는 성경 구절을 교회는 정치에 참여하면 안 된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런 해석이 맞다면 신앙인은 정치참여 수단인 투표도 포기해야 하느냐"고 지적했다.
이 주교는 "교회는 사회교리라는 가르침을 통해 정치와 경제ㆍ인권ㆍ노동ㆍ평화ㆍ환경ㆍ생명 등 사회생활의 각 영역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복음적 시각으로 성찰하도록 돕고 있다"고 했다. 그는 "사회교리라는 용어가 주는 낯섦과 선입견으로,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이 사회교리를 신앙교리와 무관한 것으로 이해한다"고 지적하고 "십계명에 바탕을 둔 사회교리는 그 자체로 모든 그리스도인이 예외 없이 실천해야 하는 가톨릭교회 교리"라고 밝혔다.

▲ 이용훈 주교가 기조강연에서 "신앙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사회 문제를 고나찰, 해석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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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용산과 쌍용차 사태를 예로 들며 "무고한 생명이 희생당한 용산참사에 국민이 제 목소리를 냈다면 쌍용차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 침묵은 국민 권익을 짓밟아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나쁜 학습효과를 정부에 심어줬다는 것이다.
금속노조 쌍용차노동지부는 2009년 사측의 2646명 부당해고에 대항해 76일간 공장을 점거하며 파업했다. 경찰 특공대 투입으로 강제 진압됐지만 노동자와 가족 23명이 강제진압의 상처와 생활고, 한국사회에 대한 환멸 등에 시달리며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 주교는 시위 현장에서의 미사봉헌 자제도 촉구했다. 그는 "사제가 시위현장에 가서 고통받는 이들의 아픔을 함께하는 건 좋지만, 천주교 최고의 전례인 미사가 자칫 정치적 도구나 시위 방편으로 사용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십계명 바탕 둔 사회교리도 엄연한 가톨릭 교회 교리 강조
미사 전례, 정치적 도구나 시위 방편 되지 않게 자제 호소
사회교리의 공동성ㆍ연대성 등 원리, 사회 정의구현에 도움
이 주교는 "제일 좋은 사회교리 실천은 각자의 위치에서 하는 것"이라며 "사회교리 내용을 잘 이해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일에 동참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서울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박동호 신부는 "사회교리는 세상을 하느님께 인도하는 교회의 대화와 협력의 언어"라며 "사회교리가 제시하는 공동선 원리, 연대성 원리, 그리고 재화사용의 보편적 목적의 원리 같은 가르침들은 우리 사회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박 신부는 "이 땅의 그리스도인은 성전은 물론 세상 한가운데서도 신앙과 성사를 구체적으로 드러내야 한다"며 "시대의 징표를 탐구하고, 복음의 빛을 비추어 성찰하고 행동함으로써 신앙은 생활이 돼야 한다"고 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사회교리 동문의 발표도 이어졌다. 오정화(도미니카, 사회교리학교 16회)씨는 "사회교리를 듣고 사회적으로 크고 작은 일과 현상들을 교회 가르침으로 바라보고, 신앙인의 눈으로 식별할 수 있게 됐다"며 "이를 통해 지나간 기록으로만 느껴지던 성경이 현재의 삶에도 유효한 생명의 말씀임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신민영(요한 사도, 17회)씨는 "사회교리 수강 후 인간 존엄성과 공동선에 대한 관심이 마음 안에 싹텄다"며 "사회교리 교육을 받은 우리가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빛이 되려고 노력한다면 세상이 더 밝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백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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